北 “치어리더 ‘짧은 치마’ 응원 자제해달라”

입력 2018-05-03 05:01
북한 농구단은 1999년 통일농구대회 참가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면서 남측에게 ‘치어리더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응원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농구 경기 시 공연을 건전한 것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자본주의 요소에 대한 북한 특유의 거부감을 보여주는 주문이어서 눈길을 끈다. 1999-2000시즌 프로농구 개막전에서 SK나이츠 치어리더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국민일보DB
1999년 남북 통일농구대회에서 경기 막간에 북한 교예단이 코트 위에서 줄넘기를 하는 모습. 국민일보DB
235㎝ 세계 최장신 이명훈 위해 특별 제작한 차·침구류 준비 요구
체류기간 비방 행위 없도록 당부… 막간 공연은 민족적인 것 요청


남북은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과거 교류가 있었던 농구 탁구 종목이 특히 단일팀에 적극적이다.

단일팀이 성사되기까지 각종 난관이 적지 않겠지만 명맥이 끊겼던 남북 스포츠 교류는 활발해질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일보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농구선수들이 남한 땅을 밟은 1999년 12월 통일농구대회의 성사 과정을 국가기록원을 통해 살펴봤다.

19년 전만 해도 북 선수단은 남측의 치어리더 응원, 경기 막간을 이용한 노래와 댄스 무대 등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한국프로농구(KBL) 공인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등의 신경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뛰면서 남북 선수들은 어느새 하나가 됐다. 아시안게임과 이후 이어질 농구 교류에서 어떤 이질감을 극복하고 감동의 무대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99년 11월 22일 작성한 ‘통일농구대회 서울 개최 관련 실무협의 결과 보고’에 따르면 남측의 현대아산과 북측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은 12월 23일과 2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두 차례 경기를 갖기로 했다.

첫날은 남북 선수들을 단결과 단합 팀으로 나눠 혼합경기를, 이튿날에는 남자부의 경우 현대-기아 연합팀이 북한의 ‘벼락’팀과 여자는 현대산업개발이 북한 ‘회오리’팀과 각각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정식 경기에서 북한은 당초 합의한 벼락팀이 아닌 최고스타 이명훈이 소속된 ‘우뢰’팀으로 바꿨다.

북측은 경기 자체보다는 막간 행사에 더 예민했다. 북 선수단은 남측에 “치어리더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선정적인 몸짓으로 응원하는 것을 자제해달라” “농구 경기 시 공연을 고상하고 건전하고 민족적인 것으로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자본주의 요소에 대한 북한 특유의 거부감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농구공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북측은 KBL 공인구였던 ‘스타 농구공’을 사용할 경우 전 경기를 혼합경기로 치르자고 제안했다. “스타 공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 경기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신 국제농구연맹(FIBA) 공인구이자 북 선수들에게 익숙한 ‘몰텐 농구공’ 사용을 요청했으며 결국 채택됐다. 반면 경기 규칙은 전 세계에 통용되는 FIBA 룰을 따르기로 양보했다. 당시 북한 농구 경기에서는 8점, 4점, 3점슛 등이 적용됐다.

북측은 농구 외적 측면에서도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 남측 체류기간 중 북측을 도발하거나 자극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즉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현대 계열사 공장 방문 등의 제의도 거절했다. “현대가 국산 무기제작에 참여한다는 것을 북측 군부가 알고 있어 현대 측 공장을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농구팬의 관심사 중 하나는 이명훈이 서울을 방문하는가 였다. 북한은 이명훈의 서울 대회 참가를 허락하면서도 특별대접을 요구했다. “이명훈의 신장에 맞는 특별히 제작한 침구류와 자동차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235㎝의 이명훈은 당시 세계 최장신 센터였다.

이런 논의 끝에 북한은 이명훈을 포함한 선수단 38명, 평양교예단 14명 등 총 62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서울로 파견했다. 여자부 경기는 현대산업개발이 북한 회오리팀에 86대 84로 이겼고, 남자부는 71대 86으로 우뢰팀에 졌다.

문체부는 2000년 1월 ‘서울 통일농구대회 종합평가보고’에서 “대회기간 잠실체육관에는 1만5000여명의 만원 관객이 들어찼다. 12월 24일 경기는 평일 낮시간대(오후 2시50분∼6시40분)임에도 여자부 11%, 남자부 1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시 방송사 메인뉴스인 저녁 9시 뉴스 시청률은 평균 17%대였다고 한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