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 특보의 ‘주한미군’ 주장, 경솔하고 위험하다

입력 2018-05-03 05:01
2000년을 시작으로 지난 4·27 회담까지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다. 이번 4·27 회담과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그 결과를 낙관하게 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가 다른 두 회담 때와 달리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고위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한 외신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를, 북한은 그 대가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체제 보장을 확약받는다는 게 이번 ‘빅딜’의 구조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북·미 관계 개선의 오랜 걸림돌을 제거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런 가운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미국 언론 기고에서 ‘평화협정이 서명되면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은 정당화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국제법상으로 주한미군 주둔은 평화협정과는 별개 사안이기에 문 특보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법적으로 유엔군사령부의 임무가 종료되는 것은 맞지만 주한미군의 지위는 정전협정이 아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자동 철수’가 성립되지 않는다.

기고 내용이 ‘교수 문정인’의 의견이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시의적으로 너무 경솔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 NBC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전 주한미군 철수 방안을 고려했으나 존 켈리 비서실장의 강력한 반대에 철회했다고 한다. 이로 미뤄 그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미국에 유리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사용할 개연성이 있다. 여기다 중국은 김 위원장이 4·27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제기하지 않은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한다. 주한미군 문제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더욱 뜨거운 이슈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과 동북아의 전략적 균형 재편에 핵심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참모가 이런 민감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정부 공식 입장과 다르게 언론에 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남·북·미 간 빅딜에서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은 물론 중국이 포함된 4자 협의에서 중국 입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문 특보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게 처음이 아니다. 솔직하고 해박한 지식으로 복잡다기한 외교안보 이슈를 쉽게 해설하는 능력이 있다는 평도 있지만 이번은 지나치다. 비상임 통일외교안보특보 자리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