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인건비 상승분과 노동자 임금 감소분 직접 지원
한시적 금전 지원 방식 한계… 기업, 유연근로제 확대 요청
장시간 노동자 51%, 영세 업체 구인난 중소기업 외면 지적도
정부가 마련 중인 근로시간(노동시간) 단축 대책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나왔던 ‘일자리 나누기’ 정책보다 진일보했다는 평이다. 단순히 근로자에게 임금삭감 등 고통을 전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기업의 인건비 상승분과 근로자의 임금감소분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자금 지원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금전적 지원보다 유연근무제 확대 등 근본 대책을 세워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2일 정부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단계적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103만3000명에 달한다. 주당 52시간 넘게 일하고 있는 근로자로 평균 근로시간은 58.9시간이다. 6.9시간을 덜 일해야 하는데, 월 평균 34만8000원의 임금감소가 예상된다.
정부가 금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되레 근로자의 실질임금만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제도 연착륙이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8년 이명박정부는 공공기관과 금융권, 대기업의 신규 채용자 초임을 10∼30% 깎는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정책으로 근로자 희생을 요구했다. 하지만 줄어든 임금만큼 새로운 일자리는 더 생기지 않았고, 신규 근로자의 임금만 깎아버린 정책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이 2021년까지 추가 고용해야 할 인력을 최대 17만8000명으로 추산한다. 이에 따른 인건비 상승부담을 그대로 기업에 전가할 순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고용노동부 고위관계자는 “신규인력 채용부담과 기존 재직자 임금감소를 보전할 수 있는 일자리 나누기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핵심인력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근로자와 회사, 정부가 각각 1대 1대 3 비율로 2년간 돈을 적립해 목돈을 만들어주는 ‘근로시간 나누기 내일채움공제’ 역시 금전적 지원의 일환이다.
다만 재정을 투입해 기업·근로자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한시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산업계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를 확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을 정해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예를 들어 2주짜리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쓴다면 첫 주에 60시간 일하고 두 번째 주에 44시간을 일해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는 식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총 근로시간만 정하고, 출퇴근 시간과 근로시간은 근로자 자유에 맡긴다. 성수기에는 근로시간을 늘리고, 비수기 때는 줄이는 식으로 탄력적 인력운용이 가능하다.
유연근무제를 채택하는 기업 비율은 미미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기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3.4%에 불과하다. 한국경제연구원 정조원 고용창출팀장은 “적용기간이 2주 또는 3개월, 두 가지뿐이라 기간과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며 “업황 사이클 등에 맞춰 최소 1년 정도까지 늘려야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노동시간 단축 기업인 간담회’에서 기업 관계자들은 김영주 고용부장관에게 유연근무제 확대를 요청했다. 중소기업인 미래나노텍 관계자는 “성수기 때는 인력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 때 사람을 많이 뽑으면 비수기 때 모두 일이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만 제대로 확대된다면 계약직 대신 더 많은 정규직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올 하반기에나 제도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문가 의견수렴,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치면 최소 2∼3년은 지나야 결론이 나온다.
정부의 지원책이 구인난을 겪는 영세중소기업의 어려움에는 눈감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장시간 근로자의 51.5%(53만2000명)는 50인 미만 사업체에 소속돼 있다. 그만큼 소규모 기업의 인력충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규모가 작을수록 사람을 뽑기 힘든 게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적극적 구인노력에도 채용하지 못한 인원 비율은 300인 미만 사업장이 12.6%로 300인 이상 사업장 4.6%에 비해 3배 정도 높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충원방법에 대한 대책도 제시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근로시간 단축] ‘고통 없는’ 일자리 나누기 좋지만… 지원 언제까지
입력 2018-05-02 19:10 수정 2018-05-02 2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