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사교과서 이념 논쟁 재점화… 국정화 교훈 벌써 잊었나

입력 2018-05-03 05:03
역사 교과서의 이념 논쟁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2020학년도부터 중·고교에서 사용할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격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한바탕 홍역을 치른 국정화 사태의 재연을 보는 듯하다. 여전히 교과서가 정치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드러내 씁쓸하다.

발단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을 2일 공개하면서부터다. 집필기준은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준수해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교육부는 이 시안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자문 등을 거쳐 오는 7월 최종안을 고시할 예정이다. 평가원의 시안이 최종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진보색이 짙은 이번 시안에서 논란이 될 부분은 크게 3가지다. 평가원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뺐고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에 대해 보수 측은 1948년 유엔 총회 결의문 일부 구절(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해석한다. 반면 진보 측은 다른 구절(that part of Korea)을 토대로 선거가 가능한 남한 지역에서 설립된 합법정부라고 풀이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보수와 진보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3년여의 소모적인 공방을 벌인 교과서 국정화 사태의 교훈은 역사 기술에서 정치를 끌어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역사 교과서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도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다. 정권이 달라졌다고 그때마다 입맛대로 내용을 바꾼다면 역사 교과서는 누더기가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역사 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최종안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중립적인 시민사회, 학계, 교육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념적 충돌이 불가피한 한국 근현대사를 너무 세세하게 다루지 않는 것도 한 방안이다. 진보와 보수의 역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