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지식 아닌 사랑의 습관으로

입력 2018-05-03 00:01 수정 2018-05-03 17:28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롤리의 소년 시절’.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 전시된 작품이다. 비아토르 제공
‘습관이 영성이다’의 저자 제임스 스미스 교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을 사로잡는 이야기의 힘을 언급하며 예배 또한 그래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비아토르 제공
┃습관이 영성이다/제임스 스미스 지음/박세혁 옮김/비아토르

우리는 왜 하나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지 못할까.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많은 학습과 배움의 시간을 갖고 믿음을 고백하지만 정작 삶은 따로인 경우가 많다. 제임스 스미스 미국 칼빈신학교 교수는 이런 현실을 향해 “제자도는 앎과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열망과 갈망의 문제”라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근대적 인간관에 반기를 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는 근대에 들어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르네 데카르트의 인간관에 교회가 익숙해지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지적 활동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던 세계를 위한 기독교의 지혜를 찾으려 한다면 근대적 환원론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고대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스미스 교수는 근대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급진정통주의 신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윤리학 미학 과학 정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선보이는 독창성 때문에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대안적인 인간 모형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또 제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그는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고, 사랑이 덕목이라면 사랑은 곧 습관”이라고 말한다. 제자도란 정보 습득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을 바로잡는 것, 곧 재형성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제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love)’를 출판사에서 ‘습관이 영성이다’로 바꾼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미스 교수는 이런 논의에서 출발해 사랑이 형성하는 의례를 ‘예전’이라 부르면서 문화적 예전을 통해 제자도의 한계 극복을 시도한다. “당신이 예배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는 명제하에 세속화된 문화에 대항하는 성격의 예배로 답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예배란 무엇일까. 그는 “기독교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대양으로 항해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우리 안에 장차 올 나라인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배가 우리에게 매주 기독교에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깊은 영향을 줌으로써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향해 움직이도록 초대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행하는 기독교 예배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이뤄지는 ‘집의 예전’, 다음세대를 향한 신앙교육에 필요한 예전, 소명을 찾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예전까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문화적 예전을 통해 제자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써온 그의 3부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을 중심으로 쉽게 풀어쓴 대중서에 가깝다. 그의 독특한 문제 제기에는 끌리지만, 전개 과정에서 펼쳐지는 철학적 논의의 난해함에 한계를 느꼈던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선 IVP 출판사가 시리즈 첫 번째 책인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에 이어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까지 번역해서 소개했다.

이달 출간된 ‘…상상하라’에서 스미스 교수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논하면서 영성의 형성과 예전적인 실천의 관련성을 고찰한다. 메를로퐁티는 근대적 세계관에서 소홀히 취급받던 ‘몸’의 불가결한 근본성을 강조한 프랑스의 철학자다. 이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를 소환해 ‘예전적 인간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스미스 교수는 이렇게 구축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소설 영화 아이폰 등 세속적 예전의 작용 양상을 살펴보고 예전적 인간론이 기독교 예배와 그리스도인의 형성에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습관이 영성이다’를 읽고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접하고픈 독자라면 문화적 예전 시리즈를 함께 읽는 것이 도움 될 듯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