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국 압축”→“판문점 어떠냐” 회담 장소 등 트위터에 올리며 반전의 재미·관심 띄우기
“정상회담 희화화” 우려와 “긍정 여론 조성” 평가 엇갈려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은 리얼리티 TV쇼를 진행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대선 출마 직전까지 미 NBC TV의 ‘어프렌티스(견습생)’를 무려 12년간 진행했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잡아끄는 감각과 언변이 탁월했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거액의 상금에 도전한 출연자들의 사업 실적을 검토해 최종 우승자 1명을 남길 때까지 한 명씩 불러 ‘넌 해고야’를 연발할 때마다 프로그램의 긴장감과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아져갔다.
그런 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흥행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트윗글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하루에도 서너 차례 북·미 회담을 언급하면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잡아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흥행몰이를 하자 북·미 회담은 전 세계적으로 최고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집회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가 ‘노벨상’이라는 구호로 이어질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기대가 싫지 않은 듯 연일 회담 준비 과정을 마치 리얼리티쇼를 진행하듯 조금씩 흘리고 있다. 반전의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경쟁과 탈락을 연상시키는 화법도 구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닷새 동안 북·미 회담 장소를 ‘5곳’에서 ‘2∼3곳’으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 다시 ‘2곳’으로 더 좁혀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장소를 놓고 대단한 유치전이 벌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다가 30일(현지시간)에는 갑자기 “회담을 판문점에서 갖는 건 어떠냐. 여러분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시청자나 팬들의 의견을 물어 ‘로케이션(촬영장소)’을 결정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답글에는 판문점을 지지하는 것이 많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건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순간”이라며 “회담은 판문점에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답글을 남겼다. 레이스 초반에 탈락한 줄 알았던 판문점이 막판에 개최권을 따내는 반전에 성공할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지만 회담 장소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지고 있다.
회담 시기에 대한 언급도 수시로 바뀌며 관심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5월까지’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나중에 ‘5월 중순이나 6월 초’로 시기를 수정했다. 그러다가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 곧바로 ‘3∼4주 안에’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시기가 계속 앞당겨지자 북·미 간 물밑협상이 급진전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쏟아졌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방식으로 정상회담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회담 장소 후보지를 입찰에 부치듯 경쟁에서 탈락시키고, 여론에 따라 개최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파격이다.
그래서 비판도 있다. 일부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희화화한다고 우려한다. 회담 내용보다 ‘이벤트’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 유도가 북·미 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된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흥행몰이에 나선 것은 그만큼 회담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자신감도 반영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트럼프, 리얼리티쇼처럼 흥행몰이… 북미회담 날짜·장소 궁금증 유발
입력 2018-05-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