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5000명 vs 경찰 3500명… 日영사관 앞 강제징용자상 충돌

입력 2018-05-01 21:43
시민단체 회원들이 1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하기 위해 옮기려 하자 경찰이 이를 둘러싼 채 저지하고 있다. 뉴시스

부산 초량동 ‘소녀상’ 옆에 기습 설치하려다 이틀간 대치
노동자대회 4천명 가세 긴장 영사관 옆 인도에 두고 해산


부산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를 추진해온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1일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상을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노동자상을 초량동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일본총영사관 쪽으로 쇠지렛대를 이용해 이동시켰다.

경찰은 병력 100여명을 투입해 이동을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회원 일부가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일본총영사관 100m 이내에서는 집회나 행진이 금지됐으며, 신고가 되지 않은 집회라 강제해산시켰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측은 “노동자상을 옮기는 것이지 집회가 아니다”라며 “아무런 근거 없이 경찰이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끌어내 다치게 했다”고 반발했다.

앞서 시민단체 회원 200여명은 전날 오후 10시30분쯤 지게차를 이용해 노동자상을 기습적으로 설치하려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혔고 밤새 대치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은 이날 오후 다시 인근에서 부산 노동자대회를 마친 민노총 조합원 등 4000여명과 함께 정발장군 동상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하지만 경찰은 40개 중대 3500여명의 병력으로 노동자상 이동을 막았다. 결국 시민단체 회원들은 노동자상을 일본총영사관 옆 건물 앞 인도 위에 두고 오후 5시쯤 해산했다. 주최 측은 마무리 집회 후 기자회견에서 이동 중 멈춘 노동자상을 현 위치에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앞서 외교부는 시민단체에 공문을 보내 “일본총영사관 앞 설치는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한 국제 관행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고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른 지역 설치를 권고하기도 했다. 일본도 민감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교도통신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 움직임에 ‘적절한 대응’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노동자상 언급은 뺐다. 북핵 문제로 공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상 문제로 문재인정부와 갈등이 표면화되길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산=윤봉학 기자, 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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