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고객 마음을 훔쳐라∼ 은행 직원 모델의 ‘이중생활’

입력 2018-05-10 09:52 수정 2018-05-10 21:23
우리은행 사내방송국인 ‘우리방송국’ 아나운서 김경민 계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본점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 계장은 일선 지점이 마감한 직후인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45분 동안 방송으로 사연과 음악을 전한다. 최종학 선임기자
우리은행 김경민 계장이 서민금융상품 ‘우리 새희망홀씨대출’의 금리 인하, 대출기간 연장을 알리는 종이판을 들고 있다. 우리은행 제공
신한금융그룹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을 기용한 ‘나는 신한인(新韓人)입니다’ 광고. 신한금융그룹 제공
NH농협은행 송은별 계장(왼쪽)이 고객과 상담하는 모습. NH농협은행 제공
기업은 주로 연예인이나 현직 모델 기용
은행은 모델 개인 이미지보다 신뢰 중요
고객에 믿음 줄 수 있는 직원 모델 선호

창구 업무 등 은행원 본연의 일 이외에
신상품 출시나 이벤트 행사 때 얼굴 역할
모델들 자부심·만족도 높아 업무에 활력


‘첫인상’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 자체로 소통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개팅, 면접, 영업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첫인상은 중요하다. 첫인상의 무게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기업이 내놓는 상품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때문에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기업들은 상품의 첫인상이 될 홍보모델을 선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기업들은 주로 연예인이나 현직 모델을 쓴다. 그들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이 직원을 홍보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왜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원을 쓸까. 홍보모델이자 은행원인 그들은 어떻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을까. 직접 만나봤다.

1만6000명의 아나운서에서 모델로

김경민(30) 계장은 우리은행 직원들의 ‘은행 점포의 마감 이후’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은행 사내방송국 아나운서인 김 계장은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45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오후’를 진행한다. 점포 문을 닫고 나서 시작되는 두 번째 업무시간에 맞춰 1만6000명의 청취자에게 갖가지 사연과 음악을 전해준다. 개·폐점 방송도 그의 몫이다.

김 계장은 매주 한 번씩 사내뉴스도 제작한다. 우리은행 소식만 아니라 국내외 주요 뉴스를 고르고 직접 앵커도 맡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뉴스는 영업점마다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직원과 고객에게 전달된다.

쉴 새 없이 바쁜 김 계장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빈 종이판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설 때다. 카메라 앞에 서면 주문이 쏟아진다. “우리은행 여자 농구팀이 통산 10회 챔피언을 달성했으니 더 기쁘게, 더 환하게 웃어요.” “서민들을 위한 금융상품의 금리를 낮추기로 했어요. 좀 더 친절해 보이게.” 주문에 따라 표정과 동작도 달라진다.

김 계장은 사내 아나운서라는 본업 외에 우리은행 홍보모델도 맡고 있다. 새로운 이벤트를 시작하거나 신상품을 내놓을 때 언론에 배포되는 보도자료 사진의 모델이 된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금융상품, 금융서비스는 김 계장이 등장하는 사진으로 고객과 처음 만난다. 그래서 홍보의 핵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세심하게 표정·동작을 맞춰야 한다. 그는 “눈빛이나 손 모양을 매번 다르게 한다”며 “촬영 때마다 수십장을 찍는데 그때그때 새로운 동작과 표현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지난해 우리은행이 출시한 ‘우리홈IoT뱅킹’ 서비스의 모델을 맡았을 때 ‘촉감’을 표현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 서비스는 냉장고와 뱅킹 서비스를 접목한 것이다.

고객에게 한발 더 가깝게

NH농협은행 송은별(27) 계장은 홍보모델 3년차다. 농협은행은 매년 직원 홍보모델을 뽑는다. 은행의 얼굴이기 때문에 직원 중에서 뽑겠다는 취지다. 평균 경쟁률은 3대 1에 이른다. 올해엔 11명을 홍보모델로 위촉했다. 학교 홍보모델이나 신문사 사진모델, 쇼핑몰 피팅모델 등을 해본 경험이 있는 직원들이 낙점을 받았다. 일하는 곳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멀게는 부산의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있다.

송 계장은 신입행원으로 서울 강남구청역 지점에서 근무하던 2016년 봄에 선배 권유로 지원했다. 사실 송 계장은 모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홍보모델 선발 면접에서 신입 행원이라는 신선함과 패기를 강조했었다고 한다.

직원 홍보모델과 전문 모델의 차이는 무엇일까. 송 계장은 ‘자연스러움’을 꼽는다. 그는 “고객과 상담하는 모습을 찍을 때도 있는데, 이건 은행원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지점에서 근무하는 홍보모델들이 빚어내는 ‘다양성’도 강점이다. 여행 성수기를 앞두고 카드상품 홍보사진을 촬영할 때는 여행 느낌을 물씬 풍기려고 야외로 나가기도 한다.

송 계장은 지난해 여름 농협은행이 6년 연속 사회공헌 1위를 달성했을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농협봉사단’ 조끼를 입은 송 계장의 모습이 점포마다 게시됐었다. 서울 서대문구 농협은행 본점 외벽에도 송 계장이 출연하는 사진이 크게 나부꼈다. 그는 “영업점을 찾는 고객 중에서 알아보고 알은척하는 분이 많았다”며 “농협은행에서 나눠준 가계부에도 그 사진이 들어갔는데 ‘가계부 쓰려고 볼 때마다 자랑스럽다’ 말하는 단골고객도 있어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왜 직원을 ‘첫인상’으로 내세울까

우리·농협은행뿐 아니라 많은 은행이 직원을 홍보모델로 쓴다. 영업점이나 본점에서 본업에 열중하던 직원이 갑작스럽게 ‘1일 모델’로 변신하기도 한다.

은행들이 직원 홍보모델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이다. 전문모델을 쓸 경우 은행이나 상품, 이벤트에 맞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모델 개인이 지닌 이미지가 은행 전체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아무나 기용할 수 없다. 신뢰의 이미지가 중요한 은행이기 때문에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우리 직원을 쓰는 게 좋은 홍보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모델을 맡은 직원의 자부심이 높아지는 부수효과도 크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홍보모델로 활동한 직원들이 만족감을 표시하는 사례가 많다. 자신이 나온 사진을 영업점에 가져다두고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한다”며 “은행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그게 영업 활력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직원을 홍보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을 기용한 ‘나는 신한인(新韓人)입니다’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현지 직원의 성공 스토리를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광고에는 신한금융그룹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일하는 직원 모델 14명이 출연했다. 이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광고에 담았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