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다가온 남북 경협… 통일금융 준비 ‘시동’

입력 2018-05-02 05:00

북한 개발비용 수백조 추산 사업 리스크 매우 높아 정부·민간 선제 대응 필수
국내외 자본 유치 절실… 투자 노하우부터 살리고 관련 정보 적극 공유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경제협력 확대방안 연구를 지시하면서 ‘통일금융’ 준비를 위한 정부부처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통일금융은 북한 인프라 개발을 위한 금융조달 방안 등을 통칭한다.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경협사업 속성상 정부·민간 회사의 선제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사업 리스크는 일반 해외 인프라 투자보다 훨씬 높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책은행, 민간 금융회사들의 투자 노하우를 살리는 동시에 북한 관련 통계 자료도 적극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4년 박근혜정부의 대북 평화 제안인 ‘드레스덴 선언’ 당시 금융권에선 통일금융 논의가 급물살을 탔었다. 금융위원회는 북한 인프라 개발에 필요한 구체적인 비용 및 금융 조달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 관계 경색으로 추가 연구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1일 “그간 경협보다는 비핵화가 가장 큰 이슈였지만 정상회담 이후 진전이 있다”며 “현 상황에 맞는 금융 조달 방안 등을 검토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협이 실제 진행되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 등이 선결 조건이다. 하지만 한국이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세워놓고 먼저 국제사회에 제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정부의 선제 대응이 필요한 이유는 북한 개발비용이 많게는 수백조원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금융위 보고서를 보면 북한 국민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을 1만 달러 수준으로 올리는 데 20년간 약 5000억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철도 등 인프라 투자와 광업·전기·전자공업 등 산업 육성에만 1750억 달러(약 180조원)가 들어간다. 정부 재정뿐만 아니라 국내와 해외의 민간 자본 유치가 필수적이다.

경협사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지만 금융회사들과 건설사 등이 컨소시엄을 이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업이 진행되면 정부, 금융회사, 민간투자자, 건설회사 등이 얽힌 복잡한 구조가 된다. 이해관계 조정에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윤석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국내 참여자들 사이에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협력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회사들도 해외 인프라 투자의 포트폴리오를 북한 쪽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협사업에서 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 투자은행(IB) 등과 경쟁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해외 IB들은 대규모 금융 조달 경험에 있어서 국내 회사들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다. 그간의 해외 인프라 투자 노하우와 함께 북한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언어도 통하는 등의 장점을 적극 살려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사업 설비 형태 등 구체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발전, 송전 사업의 경우 지상이 아닌 해상에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설비를 만들면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사업이 일방적으로 중단돼도 군함의 호위를 통해 시설을 남측으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협 논의에 필요한 북한 관련 경제, 금융 통계 정보가 아직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보유한 북한 기관의 발간물, 간행물 등을 공유하거나 북한과 협의를 통해 공개해 민간에서 아이디어를 짜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