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차이나 패싱’ 막아라… 내일 급히 방북하는 中 왕이

입력 2018-05-01 05:00
사진=뉴시스

외교부장으론 10년 만에 방북
정전협정→ 평화협정 논의 중국만 배제될까 위기감 고조
선제적 유화책 제시 가능성… 시진핑 방북 앞당겨질 수도

왕이(사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몇 주 앞두고 북한을 방문한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회담’이 문서화되는 등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우려가 제기되자 서둘러 진화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서 중국이 빠질 수 없다는 위기감이 엿보인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왕 국무위원이 이용호 북한 외무상 초청으로 2일부터 3일까지 방북한다고 발표했다.

왕 국무위원의 방북은 다양한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으로부터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듣고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비핵화 해법을 조율하는 차원일 수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 당사국이 주변국을 방문해 사후 설명해온 관례로 보면 왕 국무위원의 방북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그의 방북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중국이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남북한이 남·북·미 3자 회담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핵심 구조로 보면서 남·북·미·중 4자회담은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실제 중국 내에선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과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고,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협정 논의가 남·북·미 3자 구도로 진행되면서 중국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중국이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에서 배제되는 것은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차오신 중국 차하얼학회 연구원은 “정전협정은 중국·조선·미국 3자가 체결한 것으로 종전선언에는 당연히 이들 3자가 참여해야 한다”며 “한국은 협정 당사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북한은 석유와 식량,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로워 한국, 미국과 경제 교류의 물꼬를 튼다면 더 이상 중국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만약 북·미 수교까지 이끌어낸다면 한반도의 안보 지형은 완전히 달라진다. 북한에 중국은 더 이상 ‘혈맹’이 아닐 수 있다.

왕 국무위원이 외교부장으로는 2007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 방북하는 것을 봐도 다급한 중국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대북 외교를 맡아온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이 아닌 왕 국무위원이 방북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나 평화체제 구축 논의에서 중국이 빠질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왕 국무위원이 이번 방북에서 대북 경제 제재 해제 등 선제적인 유화책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엔 제재 중이지만 우회로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북한에 최대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관영 매체들이 북한이 성의를 보였으니 제재 해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왕 국무위원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일정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다급함을 감안하면 시 주석의 방북 일정도 최대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