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 조부 김일성 모방하며 주민 신망 얻으려했던 김정은 최근엔 ‘진솔한 지도자’ 부각
“내가 핵 쏘거나 할 사람 아냐”발언 선대 때보다 개성적이지만 회담 내용 과거와 큰 차이 없어
외교무대에서의 공개 발언 뒤집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특유의 시원시원한 화법을 선보였다. 김일성·김정일 선대 북한 지도자들도 스스로가 통 크고 결단력 있는 사람임을 과시하는 말투와 행동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젊고 국제 감각이 풍부한 점을 더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경제사정이 나쁘지 않았던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되살림으로써 주민들의 신망을 얻겠다는 전략이었다. 김 위원장은 옷차림은 물론 말투와 외모까지 김 주석과 유사하게 꾸몄다. 국방색 인민복만 고집하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양복도 자주 입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나란히 ‘판문점 선언’ 공동 발표를 하는 등 공개 연설을 즐기는 것도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6년차인 지난해부터 진솔하고 친근감 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부쩍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해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아비판’을 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TV 화면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솔직히 말하는 태도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논의하며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고속열차가 좋다고 하는데 남측 환경에 있다 북에 오면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남한에 비해 북한 인프라가 낙후돼 있음을 김 위원장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참모들에게 “(김 위원장이) 솔직 담백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관련 발언도 선대보다 더 개성적이다. 선대 지도자들이 비핵화에 관한 원칙적 입장을 주로 강조했다면, 김 위원장은 “대화를 해보면 내가 핵을 쏘거나 그럴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는가”라고 하는 등 감정적인 표현을 많이 구사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외부 세계의 의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위원장의 발언을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한 판단은 아직 유보적이다.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발언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북한의 과거 비핵화 관련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북한이 향후 어떤 태도를 보일지를 확인해야 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30일 “김 위원장 발언의 신뢰성은 북한의 추가 조치 및 말과 행동이 믿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핵 실험장 폐쇄 공개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데도 굳이 발표한 것은 적극적 비핵화 의사를 갖고 있다는 근거”라고 말했다.
반면 김 위원장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외교무대에서 공개 발언한 것을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발언 그대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한, 미국, 중국 등과 소통하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믿음을 깬다면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영원히 외톨이가 된다”며 “김 위원장은 이미 멀리 왔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솔직·화끈한 ‘김정은 스타일’… “비핵화” 믿어도 될까
입력 2018-05-0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