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美의 ‘北 정상국가 인정’ 여부에 달렸다

입력 2018-05-01 05:05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 30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기원하는 포스트잇 메시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뉴시스
현재 대북 투자는 사실상 봉쇄 개성공단·금강산사업 재개 난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투자도 막혀
미국의 입장 변화 있다 해도 북·미 관계 정상화에 장시간 소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된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협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 방향은 미국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할지 여부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북한 도발에 대응해 수차례 대북 제재안을 결의해 왔다.

2013년까지는 무기·사치품 금수조치 등 제한적인 수준의 제재였지만 2016년부터 수위가 높아졌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대응하는 결의안 2270호는 북한의 광물 수출을 금지했고, 그해 11월에 나온 결의안 2321호는 북한의 석탄 수출을 제한했다. 2017년 대중 수출액이 전년 대비 37.3% 감소하는 등 북한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가장 강한 수위의 결의안은 지난해 9월 나온 결의안 2375호다. 대북 원유 공급 동결과 북한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인 섬유제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조치로 북한 수출의 약 90%를 차지하는 품목들이 수출금지 대상에 오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투자도 사실상 봉쇄돼 있다. 결의안 2375호는 북한과의 모든 합작·협력사업을 설립·관리·운영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북한 내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나 관광사업 등은 기본적으로 합작·협력사업의 형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으로 향하는 돈줄은 완전히 묶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전문가는 30일 “해석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기존에 남북이 운영했던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사업은 원칙적으로 남북 합작사업으로 봐야 한다”며 “현 제재안 아래서는 재개가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향후 북한에서 진행될 각종 사업투자비용이 적게는 100조원대부터 많게는 270조원대에 이른다는 추정치도 민간연구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국제기구 차원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각종 금융 제재로 인해 국제기구의 자금이 투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이를 해결할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수순을 밟게 되면 나머지 대북 제재 매듭도 풀릴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해정 연구위원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우호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의 입장 변화로 유엔 결의안 해소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WB와 ADB 등 국제기구 역시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다만 미국의 입장 변화가 있다 해도 완전한 북·미 관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정상화 과정을 보면 국가 간 화해무드는 1989년부터 감지됐지만 경제제재 조치 해제(1994년)와 국교 정상화(1995년)까지 5∼6년이 걸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협을 주도해야 할 한국으로서는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로부터 ‘의무면제(waiver)’를 받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북경협 재개가 한반도 긴장해소 및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제재 대상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압록강에서 북한과 중국이 공동 운영하는 수력발전소는 북한주민 전력 수급과 직결된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