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가두방송 차명숙씨 “군화로 짓밟고 살이 터지는 고문에 몸서리쳐”

입력 2018-04-30 18:56
사진=뉴시스

“광주시민에게 가해진 고문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했습니다. 여성도 예외 없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만행을 시민에게 알리고자 가두방송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차명숙(58·사진)씨가 전두환 신군부의 끔찍했던 고문을 폭로하기 위해 38년 만에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차씨는 30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80년 5월 당시 19세의 나이에 겪었던 몸서리치는 경험을 고발했다. 그는 그해 5월19일 시민 차량에 올라 항쟁동참 방송을 했다.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한 5월21일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기관원에게 붙잡혔다. 이후 보안대와 상무대, 광주교도소로 끌려 다니며 온갖 가혹 행위를 당했다.

“무릎을 꿇게 해 군홧발로 짓이겼어요. 어린 학생은 책상 위에 앉힌 뒤 몽둥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모두 신음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지요.”

차씨는 자기 또한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받은 고문으로 인해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이어 “광주교도소로 이감된 뒤 자살을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30일 가까이 징벌방에서 쇠줄에 묶인 가죽 수갑을 양 손목에 찬 채 먹고 자고 볼일까지 보면서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며 몸서리쳤다.

차씨는 계엄포고령 위반과 내란음모 등 죄목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2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뒤 1981년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차씨는 “광주교도소는 지금이라도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