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은 우리 국민에게 살아생전 가장 뜻 깊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날이었을 것이다. 판문점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두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행보로 화해의 꽃밭을 일구는 모습을 누가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땅에는 북한의 핵도발과 북·미 간의 말 폭탄, 급기야는 4월 전쟁 위기설이 돌 정도로 전운이 감돌았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마침내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 핵 폐기와 종전을 향한 평화의 꽃송이를 피워내게 됐다. 더 감사한 것은 이 일에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가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반성, 화해로 통일의 길을 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흩어진 국론을 통합하고 남북이 화해, 협력하며 평화통일의 꽃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전엔 한 교계 단체에서 주최한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기도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설국열차가 평화열차가 되고 그 평화열차가 다시 통일열차가 되어 은빛 레일 위를 질주하게 하자”고 축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아침 국회대강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통일과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기도회에서도 나는 평화메시지와 헌시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화목의 꽃송이가 되어 그 꽃송이로 인해 남북의 들녘에 평화의 봄이 오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남북 합의문을 보면 선언적 의미만 담았지 구체성이 모호하고 실제적인 조치를 명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북·미회담에 맡기고 언급되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다고 해도 전운이 감돌았던 때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을 언급하고 평화의 분위기를 다시 조성했다는 것은 민족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한국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첫째, 양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남남갈등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단에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 극단적인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지금의 평화 분위기가 다 위장된 평화라고 주장한다. 반면 극단적인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비핵화를 하지 않고 심지어 미군이 철수 하더라도 평화부터 유지해야 한다고 맞선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양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성경적 시각으로 보고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실 아무리 북한을 품는다 하더라도 보수 진영을 품지 못하면 진영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부터 하나가 돼야 한다. 그리고 양극단의 진영을 하나로 묶고 평화통일의 정신과 시대적 혼을 이끌어가야 한다.
둘째, 끊임없이 북과 서로 교류하고 왕래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정부가 서독교회를 통해서 동독교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교류하게 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그래야 한다. 정부도 한국교회를 선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줄기차게 교류하고 왕래할 때 평화의 새 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누어져 그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그때에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빌립이라는 집사가 성령의 충만을 입고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 오순절 성령강림 같은 위대한 역사가 임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적 통일이 된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으면 북한에 많이 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기도회나 집회를 실시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전쟁과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모든 국가에 평화와 복음을 수출하는 선교 대국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 특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가 되어 대사회적 리더십을 확실하게 발휘하고 평화의 새 아침을 열어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한국교회는 끝없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 그치고 말 것이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한국교회가 평화의 아침을 열어가야 할 때
입력 2018-05-01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