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등이 휘는 아이들… 방치하면 평생 등골 휜다

입력 2018-05-01 05:00
고려대 구로병원 서승우 교수가 지난 25일 척추측만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 여학생의 상체를 숙이게 한 뒤 등의 높낮이를 측정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35도로 등뼈가 휘어져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12년간 방치했다가 최근 병원을 찾은 25세 여성의 척추X선 촬영 영상. 척추가 60도로 더 휘어져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85%가 원인 알 수 없는 ‘특발성’ 폭풍 성장기에 휘기 시작하지만 부모들은 잘 모르는 경우 많아
휜 각도가 40도를 넘을 때는 어른이 된 후 여러 문제 일으켜 학생건강검진 강화 목소리 높아

초등학교 6학년 임모(12)군의 엄마 심모(44·서울 강남구)씨는 지난해 10월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아이의 허리가 S자로 휘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다.

보건소가 병원 측에 의뢰해 관할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의 척추 X선촬영을 실시한 결과, 임군의 척추가 21도나 옆으로 굽어 척추측만증으로 진단됐다는 것이다. 심씨는 "겉으로 보기에 티가 안 나 전혀 몰랐다. 척추측만증이란 병 자체를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의사는 다행히 아직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휜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보조기를 착용하고 척추운동을 꾸준히 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한창 멋 부릴 때라 아이가 다리 꼬고 앉는 걸 좋아해 나쁜 자세 때문에 허리가 틀어진 건 아닌가 생각했다”는 심씨는 “의사가 평소 자세나 습관은 척추측만증과 큰 관련이 없다고 해 의아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 척추측만증의 상당수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게 의료진 설명이었다.

심씨는 급한 마음에 160만원을 들여 아이에게 척추 보조기를 맞춰 하루 8∼9시간을 착용케 했다. 심씨는 “지난 3월 X선을 다시 찍어봤더니 휜 각도가 13도로 줄어 일단 안심이 됐다. 하지만 한번 휜 척추가 원래대로 돌아오진 않는다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중3인 딸을 둔 안수진(46·인천 남동구)씨는 우연히 딸의 허리가 휜 사실을 발견했다. 초등 6학년 초 어느 날, 딸의 등 오른쪽 날개뼈 있는 부분이 툭 튀어나와 있고 오른쪽 어깨가 왼쪽 보다 높게 보였다는 것. 놀라서 인근 대학병원에서 X선 촬영을 했더니 척추가 35도나 옆으로 휘어져 있었다. 안씨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많이 진행됐는데, 아이가 아프다거나 불편하다고 한 적이 없어 의식하지 못했다. 무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딸은 매일 척추 보조기를 끼고 등교했고 수영 등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1년 만에 휘어진 각도가 60도로 커져 결국 수술을 받았다. 앞 가슴이 왼쪽으로 틀어져 올라가고 반대편은 처져 옷 입기조차 불편해 진 것. 무엇보다 휜 각도가 더 커지면 폐와 위 같은 장기가 틀어진 뼈에 눌려 숨쉬기 곤란하고 소화장애도 올 수 있다는 걱정이 컸다.

안씨는 “중1 올라갈 때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척추측만증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학교검진이 형식적인 것 같다”면서 “조금 일찍 발견했으면 수술까진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초등 5·6학년, 중1 때 많이 휘어

이처럼 등뼈가 옆으로 휘는 아이들이 적지 않지만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초등 5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사이 폭풍 성장기에 척추가 휘기 시작하지만 이런 사실을 부모들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실시하는 학생건강검진에서도 제대로 스크리닝이 되지 않고 있다. 키 성장과 함께 척추 휘어짐이 같이 오기 때문에 학교검진에 근골격계 항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검진은 3년에 한번씩 이뤄진다. 초등 1·4학년, 중1, 고1 때다. 특히 키가 가장 많이 자라는 초등 5·6학년은 빠져 있어 검진 사각지대다. 중학교 입학 후 증상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상당수다.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전국 단위 초·중학생 척추측만증 유병률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다만 민간 의료기관이 일부 지방자치단체 보건소와 함께 시행하고 있는 검진 데이터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척추측만증센터는 지난해 서울 13개구를 포함해 21개 시·구 초등 5·6학년, 중1학년 7만2748명을 검진해 허리가 5도 이상 휘어 치료가 필요한 환자 5894명(유병률 8.10%)을 찾아냈다. 남녀 유병률은 각 5.85%(2170명), 10.45%(3724명)로 여학생이 훨씬 높았다. 남학생 100명 가운데 5∼6명, 여학생 100명 가운데 10∼11명의 허리가 휘어져 있다는 얘기다. 여학생의 경우 40도 이상 심하게 휘어져 수술 치료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11명이나 발견됐다.

30도 이상 휘어지면 외관상 변화

척추측만증은 허리가 C자 혹은 S자로 휘어지는 병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서승우 교수는 30일 “폭발적인 뼈 성장기인 초등5학년과 중2 사이에 휘는 각도가 가장 많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10세 이전에는 흔치 않다. 여학생의 경우 초경 연령이 당겨지고 있어 남학생 보다 허리 휘는 시기도 약간 빠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척추측만증 전체 진료 환자 가운데 10대(남자 45.9%, 여자 41.6%)가 가장 많았다.

척추측만증이 있으면 등뼈가 꽈배기 비틀리듯 휘어지기 때문에 양쪽 어깨 선 높이가 차이나고 등 한쪽 부분이 튀어나온다. 여자의 경우 가슴 크기가 차이나기도 한다. 다만 30도 이상 휘어져야 이런 외관상 변화가 눈에 띈다.

어느 정도 휘어져도 몸의 기능이나 키 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80도 이상 휘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틀어진 갈비뼈가 폐나 위 등 장기를 압박해 호흡이 힘들고 소화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사춘기 아이들의 경우 허리가 휘어진 모습 때문에 정서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서 교수는 “특히 50도 이상 휘어지면 어른이 돼서도 1년에 1∼2도씩 더 틀어질 수 있고 휘어진 부위에 퇴행성 척추 변화가 일찍 찾아온다. 조기 발견과 대처가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청소년기 척추측만증은 뇌성마비나 소아마비, 근육병 등의 2차 질병으로 오기도 하지만 85%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이다. 평형 기능의 문제, 뼈와 근육 성장의 불균형, 호르몬 이상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구부정한 자세나 가방을 한쪽으로 메는 습관, 칼슘 부족 등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적 영향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척추센터 김호중 교수는 “부모가 모두 측만증인 경우 자식이 측만증을 겪을 확률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50배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여학생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관절을 잡아주는 인대와 근육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약하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휜 각도가 20도 미만일 땐 지켜보거나 운동·체조 등을 통해 척추의 유연성을 길러주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20도 이상, 40도 미만이면 보조기를 착용해 더 이상 휘지 않게 잡아줘야 한다. 휜 각도가 40도를 넘는 경우엔 어른이 된 후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은 성장이 끝나갈 무렵에 하는 게 가장 좋다. 뼈 성장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5∼16세 때 끝난다.

김 교수는 “잔여 성장이 남아있는 청소년(대개 14세 정도)에서 40도 넘는 측만증 혹은 성장이 끝난 뒤 50도가 넘는 측만증이 있다면 이후 휘는 각도는 계속 증가한다”면서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50년 장기 추적 결과를 보면 이런 아이들은 40∼50세가 되면 60∼80도 정도 크게 휘어져 외관상 문제는 물론 허리 통증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초등5학년에서 중2 사이에 20도 정도 측만증이 일단 관찰되면 3∼6개월마다 정기검사를 받으며 추가적인 휘어짐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게 좋다.

청소년기 척추측만증을 발견하고도 방치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유모(25·여)씨는 중1 때 35도의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지만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고 최근 검사결과 60도까지 휘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 교수는 “나이 많은 성인의 경우 척추가 굳어서 수술로도 교정이 잘 안되므로 가능하면 일찍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고위험군 스쿨 스크리닝 강화해야

청소년기 척추측만증의 조기 발견을 위해선 부모의 주의깊은 관찰이 우선 필요하다. 아이의 골반 높이가 달라 치마가 한쪽으로 자꾸 돌아가고 발 길이가 차이나며 신발 굽이 서로 다르게 닳는다면 척추측만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학교검진에서 고위험군(초등 5·6학년) 스크리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건강검진 항목이나 검진 시기 조정에 대해 전문가들과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민간의료기관과 함께 하는 척추측만증 검진에 보건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도 시급하다. 서 교수는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부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관할 학교에 검사를 요청해도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학교검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라도 보건소 자체 검진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