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여 어서…” 북녘 가족 부르며 애끊는 기도

입력 2018-04-30 00:00
탈북민 및 남한 그리스도인 1700여명이 28일 ‘1000명 탈북 기독인 통일소원 특별 기도회’에서 손을 들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매 맺도록 해달라며 기도하고 있다.강민석 선임기자
“영희야, 영애야. 헤어지고 난 뒤 너희를 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어. 언니가 매일 기도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에 고향에서 만나자. 꼭 살아 있어줘.”(북한에 여동생을 둔 탈북민)

“할머니, 중국에서 태어난 외손자예요. 친구들이 외할머니 댁 가면 자랑하는데 저도 가보고 싶어요. 통일이 되면 외할머니 댁에서 두부를 먹고 싶어요. 그때까지 꼭 살아 계세요.” (어머니와 한국에 온 탈북민 자녀)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설움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읽는 탈북민의 목소리엔 울음이 흠뻑 배었고, 이를 듣는 탈북민과 남한 기독교인의 얼굴에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남북정상회담 다음 날인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사랑교회에서 열린 ‘1000명 탈북기독인 통일소원 특별기도회’ 현장이다. 전국 33개 탈북민교회 성도와 탈북민, 남한 그리스도인 등 1700여명은 남북의 평화통일과 북한 복음화, 북녘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회는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소속 탈북민 목회자들이 주도적으로 인도했다. 이들은 ‘분단된 이 나라여, 들으라!’ ‘목숨을 건 탈북 행진’ ‘사랑하는 가족에게!’ 등 7가지 기도제목을 제시했다. 기도 제목마다 2∼3명의 탈북민이 북한 실상을 알리는 간증을 하거나 가족과 친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대부분 가슴 아픈 간증 내용이 많아 이를 들은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더 큰 목소리로 기도했다. 편지 낭독에서는 가족과 친구, 동료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국 중국 미국 지도자를 위한 기도에서 탈북민들은 고향에 하루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통일의 길을 열어줄 것을 간구했다. 중국 지도자에겐 강제북송을 멈추기를 호소하며 기도했다. 미국 지도자를 향해서는 3대 독재 정권의 폭정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을 외면하지 말 것과 민족이 하나 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달라며 기도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선 통일에 대한 기대만큼 북한 정권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탈북민 송신복(하나비전교회) 목사는 “북한 정부가 평화를 선언했는데 사기극이 되지 않도록 도와 달라”며 “사기극이라도 출애굽기에서 애굽의 바로가 홍해에 수장됐듯 자기 꾀에 넘어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내도록 해 달라”고 간구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미국에서 북한 인권운동을 펼치는 수잔 솔티 디펜스포럼 대표와 꽃제비 출신 탈북민 지성호씨가 나와 발언했다. 지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초 국정연설에 초청해 ‘북한 정권의 목격자’로 소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솔티 대표는 “남북, 북·미정상회담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김정은 정권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끔찍한 반인권적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라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말처럼 ‘복음만이 주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잊지 말고 기도하자”고 했다. 지씨는 “통일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 만큼 탈북민부터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자”고 당부했다.

기도회를 주관한 강철호 목사는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어제가 아닌 탈북민 1700명이 모여 기도한 오늘이 역사의 하이라이트”라며 “북한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고 이를 위해 하나님이 탈북민에게 힘을 주실 것이다. 계속 기도하자“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