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손 들어준 英 법원… 결국 숨진 희소병 아기 ‘알피’

입력 2018-04-30 05:00
사진=AP뉴시스

“회생 불가능한 半식물인간 상태”
병원, 연명치료 중단 권고하자 부모가 소송 제기했으나 패소

연명치료 논란으로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영국의 23개월 된 아기 알피 에번스(사진)가 28일(현지시간) 오전 숨졌다. 알피는 세상을 떴지만 알피 같은 희소병 아기의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생명결정권 논란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라고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이 29일 보도했다.

알피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라는 희소병을 갖고 태어났다. 2016년 12월 영국 리버풀에 있는 올더 헤이 아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해 왔다. 존엄사가 허용되는 영국에서 병원 측은 알피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반(半)식물인간 상태라며 부모에게 의미 없는 연명치료 중단을 권고했다. 하지만 알피의 부모가 거부하면서 양측 간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알피의 아버지는 연명치료를 계속하게 해 달라는 자신의 요청이 영국 법원은 물론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번번이 기각되자 지난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교황은 알피가 교황청 산하 아동전문병원인 제수 밤비노 병원에서 계속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알피에게 시민권을 발급해 로마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를 계기로 알피를 둘러싼 연명치료 논란은 국제적 이슈가 됐다.

하지만 영국 항소법원은 알피에 대한 사법 관할권이 영국에 있다며 이송을 허용하지 않았다. 연명치료를 위한 해외 이송이 알피에게 오히려 고통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병원 측은 지난 23일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알피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했다. 알피는 이후 자가호흡을 했지만 5일 만에 세상을 떴다.

영국에서는 지난해에도 미토콘드리아결핍증후군이라는 희소병에 걸린 10개월 된 아기 찰리 가드의 연명치료 중단 결정으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찰리 역시 알피처럼 부모의 반대에도 법원이 연명치료 중단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치료 지원 의사를 밝혔다. 당시 미국 병원에서 실험치료로 찰리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연명치료가 중단됐다.

찰리에 이어 알피의 사례가 나오면서 아기 환자의 생명결정권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부모가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데 병원과 법원이 왜 개입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와 의료계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아기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영국은 물론 유럽연합(EU)법 등에도 명시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우선’ 원칙에 따라 부모라도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해주지 못할 경우 친권보다는 국가의 개입이 앞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말도 못하는 아기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부모의 의견까지 거스르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다.

가디언은 의료분쟁 때 가족과 의료기관의 합의를 중재하기보다 법원에 최종 결정을 맡기는 영국 시스템도 갈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기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은 법원 결정에 일방적으로 기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