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초청’ 세계 향한 비핵화 이벤트… 트럼프에 ‘의지’ 과시

입력 2018-04-30 05:05
북한이 여섯 번의 핵실험을 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 모습과 핵실험 장소. 갱도는 모두 4개로 파악되며, 3번과 4번 갱도는 추가 핵실험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갱도가 지하 깊숙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2008년 6월 27일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고 있다. 냉각탑 폭파 장면은 북핵 6자회담 참가국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 세계에 녹화중계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5월 중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장면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DB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협상력 높이기 위한 선제카드
金, 일각 폐쇄무용론 의식 “크고 건재한 2개 갱도 더 있다”
北, 핵 실험장과 달리 ICBM 시설 공개는 않을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 실험장 폐쇄 현장을 남측과 미국에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김 위원장의 언급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강조하겠다는 의도다. 북한이 핵시설 해체 현장을 외부 세계에 공개하는 것은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회담 개최 직전인 5월 중에 선제적으로 핵 실험장 폐쇄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북부 핵 실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핵 실험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부터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모두 이곳에서 실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북부 핵 실험장 폐쇄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중단 의사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핵 실험장 폐쇄 시한과 대외 공개 방침을 추가로 밝힘으로써 비핵화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핵 실험장 폐쇄 현장 공개 발언에 즉각 환영한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남한과 미국 전문가, 언론인 초청 시점 등은 북한 측이 준비되는 대로 일정을 정하기로 했다. 윤 수석은 29일 “김 위원장의 핵 실험장 폐쇄 및 대외 공개 방침 천명은 향후 논의될 북핵 검증 과정에서 선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계리 핵 실험장 내부에는 갱도가 총 4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 때 붕괴돼 폐쇄됐다. 이후 북한은 2번 갱도 안에 다시 여러 갱도를 뚫어 총 다섯 차례의 핵실험을 이곳에서 실시했다. 2번 갱도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6차 핵실험 때 붕괴돼 추가 핵실험이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핵실험 여파에 따른 지반 붕괴로 소규모 지진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반면 3번과 4번 갱도에서는 여전히 추가 핵실험이 가능할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파악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언급한 ‘기존보다 더 큰 2개 실험시설’은 3번과 4번 갱도로 추정된다. 우리 정보 당국의 분석이 옳았음이 검증된 셈이다.

다만 북한이 ICBM 시설 공개 등 추가 조치를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핵 실험장과 달리 ICBM은 북한이 현재 보유하는 무기에 해당한다. 북한은 과거 핵 협상에서도 ‘북한과 미국은 아직까지 교전 상태’라는 명분을 대며 현존 핵무기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된 이후 ICBM 사찰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핵 시설 해체 장면 공개는 2008년 6월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이후 10년 만이다. 당시 북한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대한 대응 조치로 미 국무부 당국자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계자, 미국 CNN 방송 등 언론을 초청해 냉각탑 폭파 장면을 중계토록 했다. 우리 언론 중에서는 MBC가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은 그해 말 6자회담에서 검증의정서 채택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명박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펴자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2013년 4월에는 김 위원장의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에 따라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