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의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전하기 위해서였다. 연극계의 거장 연출가 한태숙과 온갖 상을 휩쓴 극작가 고연옥, 7년 만에 연극 무대로 귀환한 배우 장영남,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의 배우 서이숙이 뭉친 이유 말이다. 세상에 난무하는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를 경계하라는 것. 정의가 개인의 성취를 위한 변명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의심하라는 것. 최근 개막한 연극 ‘엘렉트라’가 주는 메시지다.
‘엘렉트라’는 딸 엘렉트라(장영남)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서이숙)를 살해하는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으로 꼽힌다. 한태숙 연출가는 2011년 ‘오이디푸스’와 2013년 ‘안티고네’에 이어 이번 작품으로 ‘소포클레스 3부작’을 완결한다. ‘엘렉트라’는 딸이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해 반감을 갖는 경향을 가리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로도 익숙하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고전이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나 질문은 새롭지 않고 촌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메시지가 조준한 과녁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을 견뎌 낸 고전의 메시지가 그렇듯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는 동시대성을 갖는다. ‘엘렉트라’는 고전이지만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연극이라는 의도를 지닌다. ‘당신들의 정의’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파멸의 이유가 됐다고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무대도 마찬가지다. 고대 그리스를 벗어나 현대 또는 미래의 전쟁 상황을 연상하도록 각색했고 상징적인 무대를 꾸몄다. 엘렉트라는 총을 든 게릴라 여전사로 등장하고, 화학무기를 갖춘 부대원들과 함께 어머니를 인질로 붙잡아 지하 벙커에 가둔다.
인물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하면서 연장선상에 있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에게 복수하거나 누군가를 용서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다.
두 배우는 작품의 중심에서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 장영남은 짧은 머리를 한 채로 굵은 목소리를 내면서 소위 남성성이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정의를 논하는 과정에서 여성성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서이숙은 자식을 잃고 저주를 퍼붓는 대목에서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다. 둘의 팽팽한 갈등에서 오는 긴장감은 작품 전반을 휘감는다. 5월 5일까지. 서울 서초구 LG아트센터. 3만5000∼5만5000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세상에 난무하는 ‘당신들의 정의’에 일침…연극 ‘엘렉트라’ 리뷰
입력 2018-04-29 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