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상속분을 미리 달라고 해 그 재산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 흥청망청 탕진하더니 거지가 됐다. 끼니를 잇기 어려워지자 아버지의 품꾼이라도 되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 돌아오나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 너무 기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였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큰아들은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기는커녕,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원망했다(눅 15:11∼32).
렘브란트는 젊어서부터 화가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풍족하고 행복한 나날은 길지 못했다. 어린 아들, 큰딸, 작은딸, 아내가 차례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황하던 그를 보살피고 모델까지 서 주던 새 아내가 낳은 어린 아들도 죽었다. 머지않아 새 아내도 죽고 만다. 그리고 렘브란트가 그렇게 아끼던 첫 아내의 아들 티투스마저 죽고, 재산도 다 없어져 철저히 혼자가 됐다. 이 그림 ‘탕자의 귀환’은 그때 그린 것이다.
작은아들은 머리도 다 빠지고 옷도 신발도 해졌다. 돌아온 아들의 등에 얹은 아버지의 두 손이 특별하다. 렘브란트는 왼손은 억센 남자의 손으로, 오른손은 여린 여자의 손으로 그렸다.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렘브란트도 갈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왼손은 자신의 모든 시련을 해결해 주실 강한 능력의 손으로, 오른손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손으로 그렸다.
그러나 늘 순종하며 집을 지키던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동생의 귀향을 반기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애써 거리를 두고 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헌금도 많이 내며 성경 지식까지 풍부한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된’ 자들 중엔 뒤늦게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을 불편해 한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명을 어기지 않고 살아온 나보다 하나님은 회개한 탕자를 더 사랑하신다고 원망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롬 5:20) 죄에 거할 수(롬 6:1)는 없지 않은가. 둘째 아들이든 첫째 아들이든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고통으로 거의 장님이 되셨다. 그림의 아버지처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 25∼32)
#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과대학에 들어갔지만,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가 됐다. 20대에 화가로 크게 성공해 재산도 많이 모았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어느 한 부분만 밝은 독특한 화풍으로 불멸의 대가가 됐다. 70점 넘는 자화상과 ‘야경’ ‘해부학 강의’ 등이 대표작이다.
전창림<홍익대 바이오 화학공학과 교수>
[전창림의 명화로 여는 성경 묵상] 아버지의 두 손은 왜 다를까?
입력 2018-04-2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