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15형→김정은 신년사→평창… 롤러코스터 1년

입력 2018-04-27 05:01



작년 9월 3일 6차 핵실험… 北-美 극한의 막말 대결
文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에 군사·적십자 회담 제안
김정은, 올 신년사에서 화답… 이후 일사천리로 화해 무드


남북 관계는 1년 만에 전쟁 위기 고조에서 평화 정착으로 급선회했다. 뽕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 그대로였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남북 관계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도발을 이어가며 남북, 북·미 갈등을 고조시켰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긴장 국면은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친 설전을 벌이며 한반도 정세를 전쟁 직전 상황까지 몰고 갔다.

문 대통령은 최악의 안보 위기 속에서 국정 운영을 시작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식 나흘 만인 지난해 5월 14일 김 위원장 참관 하에 신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당초 ‘무수단’으로도 알려진 ‘화성 10형’의 개량형으로 추정됐지만 북한 발표에 따라 기존에 공개된 적 없던 새 미사일로 확인됐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첫 달 동안 짧게는 이틀, 길게는 1주일 간격으로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쐈다.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축포’를 쏘듯 ICBM급 ‘화성 14형’을 발사했다. 이어 7월 28일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김 위원장은 “미 본토 전역이 우리 사정권 안에 있음이 뚜렷이 입증됐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지속적 도발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8일 “(북한은) 전 세계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화염과 분노’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북한도 강 대 강으로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 하루 만에 김락겸 북한 전략군사령관이 “화성 12형 4발을 동시 발사해 괌을 포위 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9월 3일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막말 대결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지켜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지칭하며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맞받았다. 북한은 그해 11월 29일 미국 수도 워싱턴DC까지 도달할 수 있는 ICBM급 ‘화성 15형’을 쏘아올리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험악한 정세 탓에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은 압박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 직후에는 배치가 보류됐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잔여 발사대 4기를 전개하라고 전격적으로 지시했다. 동시에 정부는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문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인 지난해 7월 남북 군사당국 회담과 적십자 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우리 측의 대화 제의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이를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이후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튿날인 1월 2일 문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김 위원장 신년사에 환영 입장을 내놨고 이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와 판문점 연락관 채널 복원을 제안했다. 그러자 북한은 다시 하루 뒤인 1월 3일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우리 측 제안을 모두 수용했다.

북한의 대남 태도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고위급 대표단에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포함시켰다. 김 제1부부장은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친서도 전달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폐회식에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지목돼 있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내려보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재인정부는 평창올림픽으로 마련된 남북 화해 무드를 한반도 정세 완화의 기회로 삼았다. 정부는 지난달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북 특사단을 평양에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측 특사단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김 위원장의 말을 받아내고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했다. 정 실장은 북한에서 돌아오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하자”는 김 위원장의 의향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곧바로 수락하면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성사되게 됐다.

북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28일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전격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올해 초 한반도 긴장 완화 국면에서 배제돼 있던 중국의 불만을 달램으로써 옛 ‘혈맹’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이어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ICBM 발사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도 ‘비핵화’ 언급은 끝내 내놓지 않아 향후 치열한 수싸움을 예고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