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정치탐구] 일과 마친 김일병 “휴대폰 사용 명 받았습니다”

입력 2018-04-25 05:05 수정 2018-04-25 17:25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장병들이 지난 1월 충남 서산시 비행단 활주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국방부는 장병들이 해온 잡초 제거, 제설 작업 등을 선별적으로 민간 인력이 맡도록 할 방침이다. 공군 제공
일과 후 외출 허용 등 병사 자유시간 부여… 제초·제설 작업 민간 인력 전환도 추진
영창까지 보내던 ‘휴대폰 사용’ 추진엔 “기밀 유출 가능성 있어 시기상조” 지적도
국민 49.2%는 “軍 일과 후 외출 반대” 국방부 “軍 인권 심각… 개혁 미루기 어려워”
올해 일부 시범실시 후 내년 단계적 확대


문재인정부는 병사 복지 및 병영문화 개선안을 담은 국방개혁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폭력적인 상명하복 관계로 요약되는 일본식 군대 악습을 철폐하고 군 인권 향상을 꾀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현역 병사와 입대를 앞둔 20대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일과 후 휴대폰 사용과 외출을 허용하고 제설·제초 작업 등을 민간에 맡기는 개혁안이다. 다만 군 내부에선 '군기가 생명인 군 조직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개혁안은 실현될 수 있을까.

평일 외출 가능, 사역 금지

경기도 한 부대에서 복무 중인 김민수(가명·23) 일병은 자신의 생일에 맞춰 부대를 찾아온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평일 일과 후 외출을 신청했다. 외출신고를 하고 오후 6시30분쯤 부대 인근 식당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한 뒤 오후 8시50분쯤 복귀했다. 복귀 신고 후엔 부모님에게 ‘잘 들어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앞으로 국방개혁안이 실현됐을 경우 가능해지는 가상의 사례다. 병영문화 개선의 핵심은 장교뿐 아니라 병사들에게도 출퇴근 개념을 적극 적용한다는 것이다. 일과시간 이후 개인 생활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다. 국방부는 군 간부들이 일과 후 병사들의 생활관에 출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개혁안이 현실화되면 병사들은 오후 6시부터 점호 준비를 시작하는 오후 9시 전까지 ‘자유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국방부는 군 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각종 작업을 최소화하는 개혁안도 추진 중이다. 제초나 제설 사역 등을 민간 인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를 방문해 “잡초 제거, 제설 작업 등 각종 사역 임무로 인한 장병들의 고충이 매우 큰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병사들이 전투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업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군 관계자는 “병 복지 및 병영문화 개선안은 병사를 값싼 노동력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작전에 해당하는 사역의 경우엔 현재와 마찬가지로 병사에게 맡긴다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잡아놓고 있다. 예를 들면 군용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의 눈을 치우는 것은 병사들의 몫이다. 또한 군용 차량과 장비가 오가는 전술도로의 제설 또는 부대 경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제초 임무 또한 병사들이 계속해야 할 일이 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작전이 아니라 작업에 동원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제설, 제초 작전 등을 ‘현대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실제 최전방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1개 사단이 맡는 제초 작업 면적은 축구장 110여개를 합친 크기인 93만㎡이다. 병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국방부는 병력 동원을 최소화하는 대신 포클레인, 트랙터 등 중장비 투입을 확대할 예정이다. 장비 운용은 근무원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관 화초, 잔디 가꾸기 등에 병력을 동원하는 일 역시 금지된다. 이른바 ‘사적 목적’의 장병 운용 및 지시 금지다. 다만 병사들이 생활관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까지 민간 인력에 넘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휴대폰 사용, 영창까지 갔는데

다만 이런 개혁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휴대폰 사용은 군대에서 최대 영창 징계까지 내려지는 금지 사항이다. 군 복무 시절 휴대폰 사용으로 14박15일간 영창을 다녀왔던 이영주(가명·26)씨는 24일 “불법 사항이 갑자기 합법화되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3년 경기도 한 부대에서 휴가 복귀 때 휴대폰을 몰래 반입해 수개월간 사용하다 적발됐다. 통화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주로 했다고 항변했지만 ‘감형’되지 않았다. 지금도 병사가 휴대폰을 부대에 몰래 반입하거나 사용할 경우 복종의무위반 중 지시 불이행에 해당된다. 이 경우 사용 기간과 기밀 유출 행위 등 경중을 따져 최대 15일의 영창이나 휴가 제한 등 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

군 기밀 유출 가능성을 거론하며 휴대폰 사용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군 내부에선 ‘군기가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과 시간 이후 자유시간이 늘어나면 병사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전방 부대 지휘관을 맡았던 한 장교는 “병사들이 사고를 칠 경우 지휘관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우리 군의 실정”이라며 “병사 개인의 잘못은 본인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지휘관 책임을 덜어주는 제도가 우선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일과 후 외출이 허용되더라도 도시 인근이 아닌 최전방 지역 병사들은 “자유시간이 생겨도 갈 데가 없다”는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일반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지는 않다. 절반가량이 ‘일과 후 외출’ 방안에 반대했다. ‘국방력을 떨어뜨리고 최전방과 후방 간 형평성 문제가 있기에 전면 반대한다’는 응답이 49.2%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CBS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였다. ‘병사의 인권증진 차원에서 최전방 제외, 비상시 통제 등 조건부로 찬성한다’는 응답은 36.9%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13.9%였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

국방부는 개혁 과제를 미루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방개혁 시행 초기의 여러 부작용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지만 시대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외국군과 비교했을 때 우리 군의 인권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터키 군은 당직이나 초소 근무 임무를 맡았을 때를 제외하고 병들이 서로 지시를 하거나 명령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대만은 군 인권 개선을 위해 각 군의 병사와 장교뿐 아니라 군사학교 학생, 군인의 가족 및 유족 등을 위한 권익보장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권익보장위에 접수된 안건은 7일 이내 검토 과정을 거쳐 예상 처리 시한을 고지하도록 하고 있다.

국방부는 국방개혁안에 대한 일부 오해가 반대 여론을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평일 일과 후 외출 허용안의 경우 모든 병사들이 일과 후 외출하도록 한다는 게 아니다. 마치 평일 일과 후엔 모든 병사들이 자유롭게 부대 밖으로 외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반대 여론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개혁으로 추진하는 일과 후 외출 방안은 부모 방문이나 병원 치료 등을 위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외출을 허용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후 휴대폰 사용 허용이나 사역 금지 방안은 그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군 관계자는 “현재 병사들보다 더 많은 기밀을 다루는 군 간부들의 경우에도 휴대폰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데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병사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 그에 따른 책임감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의 국방개혁 실현 의지 역시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 인권 개선을 비롯한 국방개혁안을 차질 없이 시행할 것을 송 장관에게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올해 일부 개혁안 시범실시를 거쳐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