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투명성 담보” 표현 사용 핵실험장 사찰 등 포함한 전례없는 비핵화 조치란 분석
北 정상회담 계기로 제재 해제→외자 유치 나설 듯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공세강화할 가능성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핵 동결’ 선언으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을 대신할 새 전략으로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제시했다. 핵무기 개발은 완료된 만큼 이제부터 핵을 담보 삼아 외부 투자를 유치해 경제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남북, 북·중 경제협력은 물론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북·미, 북·일 교류에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며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은 가장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노선으로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천명한 경제 발전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내려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 제재로 주요 교역품인 석탄, 철광석, 수산물, 섬유 등의 수출이 차단되는 등 경제가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경제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핵과 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원회의 결정서에는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 마련’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 등 현재 국면을 대화로 타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22일 “북한이 경제 건설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국제 환경과 국제사회와의 긴장 완화 및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전원회의 결정 사항은 향후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북한 비핵화와 북·미 수교, 대북 안전보장, 경제제재 해제 등을 위한 협상을 정당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내부 주민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최근 수년간 핵보유 논리를 정당화하는 선전선동 작업에 집중해 왔다.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거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될 때마다 이 사실을 관영 언론에 공개하며 대미 적개심을 고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북·미 대화와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은 주민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북핵 폐기는 비핵화 협상의 입구가 아닌 출구라는 점에서 북한이 조기에 비핵화 선언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관측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병진 노선을 추진해온 게 5년인데, 갑자기 북·미 대화와 비핵화 선언이 나오면 논리적 공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메울 장치가 필요하다”면서 “핵을 가진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심어주면서 경제로 방향을 전환하는 동시에 비핵화 여지를 두는 말을 함께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는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투명성 담보’ 표현을 쓴 것은 핵실험장 사찰 등을 포함한 전례 없는 비핵화 조치에 나선다는 뜻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제 핵 레짐(체제)에서 투명성 담보 표현은 통상적으로 사찰을 통한 검증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그 반대급부로 남측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연구원은 “북한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북한 경제개발구 사업과 남북 경협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내각에 대한 당과 군부의 간섭을 배제해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등 경제 분야에서도 ‘정상국가화’ 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경제’로 방향 튼 北… ‘비핵화 시계’ 째깍째깍
입력 2018-04-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