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카이로스의 때, 평화의 기회 놓치지 말아야”

입력 2018-04-23 00:00 수정 2018-04-23 19:35

11년 만에 열리는 '2018 남북 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때다. 원로 및 전문가 46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자문위원단 가운데 기독 인사들로부터 성공적 회담을 위한 제언과 교계의 역할을 들어봤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에 소속된 기독 원로·전문가 자문위원들은 이번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평화를 만드는 절호의 기회”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약에 등장하는 산상수훈 가운데 ‘팔복’에 근거해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신앙인의 자세를 역설했다. 한 교수는 “성경 본문에서는 ‘평화를 만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란 표현이 나온다”며 “남북한이 70년간 서로를 ‘악마화’해 온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누구보다 이번 회담을 통해 평화가 정착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화를 만드는 사람만이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일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장상 WCC 공동의장은 “개인적으로 통일은 하나님의 뜻이 개입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본다”며 “평화 통일로 가는 길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남북한 간에 이질감을 줄이는 데 신앙인이 나서서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배기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은 회담이 열리는 현시점을 ‘카이로스(특별한 시간)의 때’라 정의했다. 그는 “이전에 2차례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그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아 상황이 악화된 상태였는데 다시 때가 왔다”며 “카이로스의 때를 전쟁이 아닌 평화로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적극 움켜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 민간교류, 경제협력 기대

기독 자문위원들은 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비핵화 이외 회담 내용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 경제 협력 분야 등이다.

장 공동의장은 “‘비핵화 합의’라는 큰 틀이 우선 해결돼야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북·미 간 비핵화 합의가 돼 국가 간 관계 정상화가 되면 경제적 협력관계 및 민간교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 종전 체제가 이뤄지고 북·미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는 분위기라면 남북 정상 간 합의는 더 탄력받을 것”이라며 “만약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이뤄진다면 이는 상전벽해 같은 변화로 21세기 최초로 탈냉전을 통한 평화체제가 이뤄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담 이후 생길 변화로 ‘서울과 평양의 연락사무소’와 ‘경제협력 활성화’를 들었다. 그는 “제 상상력에 기대자면 회담 이후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돼 대사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이는 남북 간 이질감을 제도·심리적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평화를 만드는 연락 장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교류가 늘어나면 잠정 중단된 남북 간 경제협력이 늘어날 것”이라며 “개성공단 재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보다 더 유효한 남북 간 경제 공동체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 자문단은 남북 간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에 긍정적이면서도 구체적 실행에 있어선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남북 교류 및 협력엔 예민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문화 교류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며 “문제는 경제협력이다. 이는 제재와 부딪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 고문도 “여러 가능성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핵 문제로 인한 국민적 인식에 거리낌이 있고, 미국 시각도 다르기에 구체적 합의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이산가족은 인도적 문제라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국민 정서상 핵 문제 때문에 꺼릴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대북 지원은 남북 경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교계 인정하고 교류 협의체 구성

남북 교류 협력에 있어 한국교회가 기여할 점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한국교계는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을 비롯한 북한 교계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류와 협력에 있어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신뢰와 존중, 평화 정착을 위한 화해의 길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특히 이념 틀에 갇혀 비방과 배척을 하는 비신앙적 입장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북한 교회 스스로가 선교적 활동을 올바로 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지원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교파 및 교회를 북한 땅에 심으려는 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배 고문은 합리적 남북 교류와 협력을 위해 한국교회가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북 지원에 나서왔지만 통일된 방법이 없이 경쟁적으로 활동해 왔다”며 “교계 내 보수, 진보, 개별 교단을 넘어서는 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이고 다양한 대북 사업을 펼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한국교회는 교류에 앞서 예수께서 명령한 평화의 전령사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교회가 반성과 평화의 자세로 나선다면 남북관계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민경 김동우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