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버리고 경제로 기어 바꿔” “핵보유국 행세 포기 의사 없어”

입력 2018-04-23 05:00

WP “낙관 섣부르지만 의미” WSJ “상황따라 뒤집을 수도”
“비핵화 선언과 거리 멀다” 빅터 차, 부정적으로 평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영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면서 “상황이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김정은이 핵을 버리고 경제로 기어를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선언했지만, 핵무기 포기 의사가 없다는 것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비핵화 선언과 거리가 멀다”며 “북한은 핵보유국 행세를 하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NYT는 21일(현지시간) “김정은이 갑작스레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고 경제 재건에 국가자원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을 선언했다”며 “북한이 핵무기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협상할 뜻이 있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만약 경제개발에 진지하게 나서겠다는 것이라면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북한이 중국 덩샤오핑식 개방정책을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NYT는 그러나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지 여부는 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WP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까지 낙관하기는 섣부르지만, 그동안 적대적인 북한 정권이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과연 김정은 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부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WP는 백악관 관계자들이 북한의 발표에 놀라기는 했지만 김정은이 덫을 놓은 것일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북한이 설정한 조치들은 상황이 달라지면 재빨리 뒤집힐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CNBC 방송은 “김정은 정권이 2011년 집권한 이후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는데 그 미사일들을 포기할 준비가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반응과 의견도 팽팽히 엇갈렸다. 대릴 킴밸 무기통제협회 이사는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한 것은 매우 중요한 약속”이라며 “핵실험 금지조약(NTBT) 가입 같은 구체적인 조치를 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애덤 마운트 미국과학자연맹(FAS)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무기 기술을 완벽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했다는 측면에서는 실험 중단 자체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빅터 차는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미 대화 중에는 모든 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번 발표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오히려 북한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의 조지프 버뮤데즈 연구원은 “북한의 노림수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비난이 미국에 향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비역 중령인 다니엘 데이비스는 CNBC방송에 나와 “단기간에 한반도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기대감은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