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의 카메라’ 더는 새롭지 않은 홍상수의 솔직함 [리뷰]

입력 2018-04-23 00:10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의 한 장면. 이 영화 촬영은 2016년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사생활이 알려지기 직전 프랑스 칸에서 이뤄졌다. 영화제작 전원사 제공
남과 여, 술과 말이 뒤엉킨 소동극. 홍상수 영화 특유의 이 공식은 신작 ‘클레어의 카메라’(사진)에서 역시 유효하다. 연출 스타일이 확고할지언정 늘 새로운 뭔가를 창조해 왔던 그다. 하지만 김민희라는 뮤즈가 그의 세계로 들어온 뒤 그는 어쩐 일인지 동어반복만 계속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 배급사 직원 만희(김민희). 그는 칸영화제 출장 도중 회사의 대표인 양혜(장미희)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는다. 이유를 물어도 “정직하지 않아서”라는 모호한 답변만 돌아온다. 후에 깨닫는다. 자신이 해고당한 까닭은 양혜의 연인인 영화감독 완수(정진영)와 하룻밤을 보냈기 때문이란 걸.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라는 여자가 세 사람의 주위를 맴돈다. 파리에서 온 음악교사인데, 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사진에 찍히고 난 뒤 그 대상은 어떻게든 변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왜 사진을 찍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장면들이 퍼즐처럼 뒤죽박죽 배열됐으나 전체적인 인과관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극 흐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클레어는 마치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인다. 어떤 시점에서든 그는 끈질기게 만희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데, 그건 아마도 만희의 여러 가능성을 포착해내는 행위인 듯하다.

열심히 일하는 만희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이 영화는 만희, 그러니까 김민희를 향한 애정으로 꽉 들어차 있다. 앞서 선보인 합작품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도’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남자 주인공의 입으로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점에서도 그렇다.

수년간 함께 일해 온 직원을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단번에 내치는 양혜는 냉정한 대중을 빗댄 인물로 해석된다. “왜 쫓겨나야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 그만두라면 그만둬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겠나”라는 만희의 한탄 또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홍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수시로 김민희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데, 짧은 반바지를 입은 만희에게 완수가 쏟아내는 지질한 대사에서마저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남자들의 눈요기 감이 되고 싶니? 싸구려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어? 넌 영혼이 예뻐. 넌 너무 예뻐. 그러니까 네 자신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

어쩌면 홍 감독은 “솔직하게 살아야 (만드는) 영화도 솔직하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민희가 배우로서 지닌 역량을 최고치로 발현시켜주는 이가 홍 감독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제70회 칸영화제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 초청작. 25일 개봉. 69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