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완전한 비핵화’… 사찰·검증이 최대 관건

입력 2018-04-23 05:00
북한이 북핵 6자회담 합의에 따라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있다. 6자회담은 그러나 미국의 사찰 요구 등을 북한이 거부하면서 그해 12월 이후 중단됐다. AP뉴시스

“신고 시설 外 의심 지역도 사찰할 수 있도록 합의하고 사찰 주기·빈도 단축해야
북한이 보상만 챙기고 은폐·먹튀 못하도록 판짜야”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선언 등 구체적인 행동을 예고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바라는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중에서도 핵 사찰·검증은 비핵화 프로세스의 핵심이자 난제로 꼽힌다. 1990년대 1차 북핵 위기를 불러온 것도, 북핵 6자회담이 2008년 12월 결렬된 것도 검증을 둘러싼 이견 탓이 컸다.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래 검증 문제는 번번이 ‘딜 브레이커’였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은폐’와 ‘먹튀’를 차단하는 것이 검증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핵폐기 검증은 1차적으로 북한의 신고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대표적인 영변 핵시설만 해도 5㎿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시설 등 확인된 건물만 39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파악된 핵시설은 영변을 비롯해 황북 평산 및 박천에 있는 우라늄 정련공장, 평남 평산 및 순천에 있는 우라늄 광산 정도다. 북한이 다른 핵시설을 비밀리에 만들어 운영했다면 스스로 공개하기 전 찾아내기는 어렵다. 포괄적이고 정확한 최초 신고가 중요한 이유다.

이란 리비아 남아프리아공화국 등 과거 비핵화 사례에서 검증 주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였다. IAEA의 검증은 당사국과 IAEA 간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이뤄진다. 안전조치는 핵물질과 장비, 시설이 핵무기로 전용되지 않도록 검증하는 활동이다. 신고 및 검증의 성격, 범위에 따라 전면적·부분적·자발적 안전조치협정으로 나뉜다. 여기에 신고하지 않은 핵 활동도 탐지하도록 사찰 권한을 확대하는 추가의정서(AP)가 있다. AP는 90년대 후반 이라크, 북한의 비밀 핵 활동이 사실로 확인되자 기존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AP를 수용하는지가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22일 “핵물질이나 핵무기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며 “북한이 신고한 시설뿐 아니라 의심되는 지역도 사찰할 수 있도록 합의가 이뤄지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IAEA의 사찰 주기와 빈도를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진무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핵 폐기 과정은 기술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압축하는 게 쉽지 않다”며 “가장 당면한 위협, 즉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부터 해체하고 그다음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제는 북한에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라며 “북한이 보상만 챙기고 나가지 못하도록 판을 짜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IAEA 검증의 한계도 있다. 당사국이 안전조치협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IAEA의 제재 조치는 회원 자격 정지, IAEA가 지원한 물질·장비의 반환 요구 정도다.

북한은 과거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해놓고 신고 과정에서 핵심 정보를 누락하거나 특별사찰 요구에 반발해 IAEA를 탈퇴, 사찰단을 추방했던 전력이 있다. 북한은 92년 5월 처음으로 IAEA에 ‘5㎿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1회 재처리해 추출한 약 100g의 플루토늄’을 신고했다. 그러나 IAEA가 이듬해 2월까지 6차례 사찰을 통해 최초신고서를 검증한 결과 북한이 수차례 재처리했고, 사용후핵연료 분석 결과도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IAEA는 북한에 핵폐기물 저장시설로 추정되는 2개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군사시설이라며 거부했다.

이후 북한이 IAEA 탈퇴를 통보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2007년 2월 비핵화 초기 조치 합의를 이끌어낸 북핵 6자회담이 2008년 12월 끝내 결렬된 이유도 검증 시기, 방법, 대상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IAEA는 2009년 4월 사찰단이 북한에서 추방된 이후 복귀에 대비해 준비를 계속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최근의 비핵화 합의인 2012년 북·미 2·29 합의엔 영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 동결 대상으로 들어갔다. IAEA 사찰단이나 미 당국을 통해 북한의 UEP 가동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무산됐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