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의 핵실험장 폐기 선언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입력 2018-04-23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력 도발 중단을 선언했다. 6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정책 브랜드인 핵·경제 병진 노선을 일단락짓고 경제 건설에 집중한다는 새 전략 노선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했다. 대화 국면에서 나온 북한의 첫 선제적 행동이다. 북핵 협상 프로세스에 있어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추가 도발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함에 따라 한국전쟁 이후 65년간 긴장 상태로 있던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완연해졌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의 돌파구를 열고 경제 운용의 숨통을 틔우려는 의도이겠지만 북한의 자발적 조치는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신들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국제사회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ICBM 시험발사라는 뇌관을 제거한 점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비핵화 담판을 지을 명분을 갖게 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 간 조율 작업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아 비핵화를 넘어 평화협정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짚고 가야 할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보유 중인 핵 및 ICBM도 마찬가지다. 핵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우라늄을 농축하는 영변 핵시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반면 전원회의 결정서에 군축을 언급하며 핵실험 금지 및 선(先) 사용 금지, 이송 금지를 열거했다. 사실상 핵보유국 입장에서 군축 협상을 노리겠다는 의미다. 핵을 포기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대화의 모멘텀도 이어가려는 속셈이 보인다. 협상 과정에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하며 철저하게 실리를 얻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남북 및 북·미 협상의 순항을 말하기엔 아직 이른 셈이다.

한·미가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하는 시점이다. 방법론에 더 집중해야 한다. 손바닥 뒤집듯이 자신들의 입장을 바꿔왔던 북한이기에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이행할 세부사항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관건은 완벽한 검증이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지 유리알처럼 살필 수 있는 확실한 검증 방식을 받아내야 한다. 기존에 드러나 있는 핵 관련 시설뿐 아니라 땅속 깊숙이 숨겨둔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샅샅이 찾아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북한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것을 대원칙으로 해야 함은 당연하다.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 가해 북한 스스로 완벽한 핵 정보 공개에 나서도록 하는 것도 잊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