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체코의 1차전. 0-0으로 맞서 있던 1피리어드 7분 34초 한국의 브락 라던스키가 왼쪽 페이스오프 서클 주변에서 중앙으로 패스를 찔러 주자 포워드 조민호(31·안양 한라)가 날카로운 리스트샷으로 강호 체코의 골문을 열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의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저도 골이 들어간 걸 보고 놀랐어요. 관중이 모두 일어나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쳐 주는 모습을 보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더라고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조민호는 당시를 회상하며 활짝 웃었다.
지난 19일 안양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조민호는 2018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월드챔피언십(2018 WC)에 대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조민호는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뒤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성적만 보면 형편없었죠. 조별리그에서 체코에 1대 2, 스위스에 0대 8, 캐나다에 0대 4로 패했고 핀란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선 2대 5로 패했으니까요. 하지만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경기 중 우리가 상대를 압도했을 때도 있었어요. 우리 필드 플레이어 5명이 하나로 뭉치면 세계 톱랭커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백지선호’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는 사실을 2018 WC에서 증명해야 한다. IIHF 랭킹 18위인 한국은 5월 4일부터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8 WC에 참가한다. 조별리그 B조에 편성된 한국은 캐나다(1위), 핀란드(4위), 미국(6위), 독일(7위), 노르웨이(9위), 라트비아(13위), 덴마크(14위)와 맞붙는다.
2018 WC에서 공격의 선봉에 서는 조민호는 이렇게 각오를 다졌다. “이번 대회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들도 일부 참가해요. 또 모든 팀이 최상의 전력을 꾸려 나서기 때문에 평창올림픽 때보다 더 힘든 경기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평창올림픽 이후 더욱 강해진 모습을 보여 주겠습니다. 우리의 장점인 조직력과 역습으로 승점 6점 이상을 올려 내년에도 월드챔피언십에 잔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지선호는 23일 출국해 슬로바키아에 훈련 캠프를 차리고 최종 담금질을 한다.
조민호는 지난달 11일 안양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프리블레이즈(일본)와의 2017-2018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플레이오프 준결승전 2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1차전에서 패했던 안양은 조민호의 활약 덕분에 2차전에서 회생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오지 이글스(일본)를 꺾고 아시아리그 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했다.
조민호는 고려대 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맹활약하며 주목받았다. 2010년 신인왕을 차지했으며, 2015-2106 시즌 베스트 포워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아시아리그에서 331경기에 출전해 114골, 264도움을 기록 중이다.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 주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에 능하다.
40세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조민호의 마지막 꿈은 소박하면서도 간절하다. “이제 나이가 드니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에 더 욕심이 납니다. 소속팀이든 대표팀이든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4년 후 베이징올림픽에 자력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죠.”
안양=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평창올림픽 한국 男 아이스하키 첫 골 주인공 조민호 “월드챔피언십에선 더 강해진 모습 보여 주겠다”
입력 2018-04-22 19:10 수정 2018-04-22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