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3명 오순도순 살아가… 출입구엔 경사로·화장실엔 봉, 가스레인지는 자동 소화시스템
학생 자취하듯 생활규칙도 정해 “이런 생활 할 수 있는 건 행운”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이 무조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은 시설에서 생활한다는 통념을 깨려는 움직임이다. 시설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장애인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기자가 지난 11일 찾은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아파트가 그런 곳이었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운영하는 장애인 자립지원주택인 이곳에는 장애인 3명이 살고 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문석영(27)씨가 활짝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문씨는 지체·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지체장애 3급 박기대(38), 지적뇌병변 1급 임종운(50)씨도 문씨와 살고 있다.
겉보기에는 다른 가정집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장애인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해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각 방 출입구에는 문지방이 없었다. 신발장이 있는 출입구에는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화장실 벽에는 손잡이용 봉이 달려 있었다.
부엌 가스레인지에는 자동 소화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불이 꺼지기 때문에 다시 점화해야 한다. 이 집의 ‘요리사’인 문씨가 작동 방법을 설명하면서 “요리할 때는 불편하지만 안전 때문이라니 괜찮다”고 말했다. 기자를 안내한 백상진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지난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이후 화재에 대한 대비를 더 강화했다”고 귀띔했다.
자립을 위해선 스스로 생활규율을 세우고 지키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식사 준비나 빨래는 나눠서 한다. 거실 벽에는 이들이 스스로 정한 생활 수칙이 붙어 있었다. 라면은 각자 돈으로 사먹기, 계란은 각자 10개씩만 먹고 부족할 때는 자기 돈으로 사먹기, 각자 취향을 이야기하기 등 장보기 기준과 빨래 순서, 청소 담당구역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백 활동가는 “대학생들 여러 명이 한집에 살 때 정하는 생활수칙과 다를 바 없다”며 “활동가들이 조언을 해주지만 식구들이 알아서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 집에 가장 먼저 입주한 박씨는 강서구의 한 복지기관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임씨는 물고기를 돌보는 일이 취미다. 거실에 열대어 6마리가 살고 있는 어항이 임씨 담당이다. 그는 “퇴근 후 물고기를 돌볼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직접 조명을 조절하고 물고기들이 숨을 수 있는 인공화초의 배치를 바꾸기도 했다. 백 활동가는 “임씨가 제일 조용한 성격인데 주위에 살아 있거나 움직이는 것들에 각별한 마음을 쏟는다”고 말했다.
이 집에서 만난 세 사람 모두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했다. 대부분 장애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주거환경이기 때문이다. 백 활동가는 “집안에 이런 시설을 갖추고 주변에 대형마트나 지하철역 등이 있는 자립생활주택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곳 장애인들은 생활규율을 만들고 경제적 독립을 준비하면서 시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사생활도 영위하며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가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현재 국내 장애인시설은 1505개소이고 3만980명이 단체생활을 하고 있다. 시설 한 곳마다 20여명이 있는 셈이다. 인권위는 차별 철폐에 집중하고 있는 장애인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 이들이 평범한 이웃으로 자연스레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경구 황윤태 기자 nine@kmib.co.kr
장애인의 ‘러브하우스’ 가보니… 식사·빨래는 순번, 독립적 생활
입력 2018-04-2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