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절차 무시한 판결 3건… 대법 “다시 재판하라” 환송

입력 2018-04-21 05:05

대법원이 형사소송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하급심 판결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최근 대법원은 기본적인 재판 절차를 무시한 판결 3건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12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이 선고된 오모(42)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

오씨는 지난해 1월 한 달 동안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커뮤니티에 허위매물을 올려 19명을 상대로 482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 2심 재판부는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오씨는 항소심이 시작되기 전 “경제적 이유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으니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달라”고 재판부에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국선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 변론 종결 뒤에야 청구 기각 결정을 내렸고 오씨에게는 징역 8개월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오씨는 빈곤 등의 사유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오씨는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해 효과적인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적법하게 제출된 항소 이유서인데도 항소 이유를 심리하지 않고 선고한 판결도 파기됐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이 선고된 김모(44)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씨 변호인은 항소심 첫 재판에서 “추후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뒤 기한 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추가로 공판기일을 잡지 않고 변론을 종결한 뒤 선고했다. 대법원은 “항소이유에 대해 변론한 후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설명했다.

피고인의 소재를 파악하려 노력하지 않고 공시송달 결정을 내린 뒤 선고한 판결도 파기환송됐다. 공시송달이란 피고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을 때 소환장 등을 법원게시판에 게재하고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송달 방법이다. 대법원은 사기 혐의로 징역 8개월이 선고된 조모(47)씨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조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이 선고된 후 “산업재해로 머리를 다친 남편과 치매 노모를 간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항소이유서에 써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씨가 출석한 상태에서 세 차례 공판을 열고 변론을 종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변론재개 결정을 내렸고 조씨에게 소환장을 보냈지만 송달되지 않았다. 이후 야간송달을 시도하고 경찰에 소재지 탐색을 요청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공시송달 결정을 내리고 선고기일을 진행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남편과 노모를 간호하느라 주거지에서 지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공시송달 결정 전 병원에 전화해 피고인 소재를 파악하는 등 적절한 시도 없이 판결한 것은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