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은 큰 사회적 충격을 안겨줬다. 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모녀 사망사건이 지난 8일 충북 증평에서 발생했다. 잊혀질 만하면 일어나는 우리 이웃의 극단적인 선택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자살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 작용해 발생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개인의 고단한 삶으로 이어지면서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 돼 버렸다. 하루 36명, 40분마다 1명이 자살하는 나라. 고독사를 포함해서 무연고사망자의 숫자도 한 해 2000명에 이른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았지만 국민의 우울감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듯하다.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운 취약계층을 찾아내는 복지사각지대 발굴은 정부의 최대 난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복지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단전·단수 등 고위험 가구에 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읍·면·동 주민센터의 복지전담공무원을 늘려 찾아가는 맞춤형 보건복지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증평 모녀사건 발생 후 보건복지부는 생활여건이 급격히 악화된 가구를 위기 가구의 범주에 넣고 관리비 체납정보를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상담과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통합사례관리 인력을 늘려달라는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누군가의 어려움을 공공행정에서 찾아내 예방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근본적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사각지대를 줄이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포용사회라는 국가비전 속에 복지, 보육, 안전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국정과제들을 내놓았다. 공공전달체계의 개편과 확장도 고민 중이다. 벼랑 끝 삶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려면 정책과 제도를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공식적인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채워 넣는 일도 중요하다.
올해 초 영국에서는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한 것이 화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으로 고통 받아 왔으며, 이제는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과 경험을 나누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 행동할 것이라고 한다. 1인 가구와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우리사회도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단절로 인한 고독감과 절망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최근 복지가 주민들을 만나면서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차별과 배제가 있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증가하고 행복해질 수 없다. 현재 전국 100여 곳의 시·군·구에서는 민간봉사조직인 ‘좋은이웃들’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증평군은 ‘좋은이웃들’ 사업이 수행되지 않고 있었다. 주민센터 등 공공에서 사례 발굴을 해도 위기에 처한 여러 가구의 문제를 세심하게 살피기는 역부족이다.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의 가정을 찾아 말벗이 되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울어줄 수 있는 건 공무원이나 전문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민과 관이 협력하고 이웃이 함께 끌어안는 마을 친화적 복지시스템이 만들어질 때, 사각지대에 대한 우리의 불안과 충격은 줄어들 것이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고-홍선미] 마을친화적 복지시스템을
입력 2018-04-2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