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 무고죄 부추겨 피해자 침묵하게 만들기도
성희롱 익명 신고 개설 후 40여일 만에 114건 접수
미투(#MeToo) 운동으로 성폭력을 폭로한 이들을 향한 보복성 고소도 치밀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의심에서 지지로-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포럼을 열고 성폭력 가해자의 역고소 현황을 분석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법조계가 성폭력 역고소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폭력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법률 서비스가 가해자들의 보복을 조장하는 형식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성범죄 전담 변호사’ ‘무고 전문’ 등의 광고가 늘었다”며 “법무법인들은 이런 홍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협박과 역고소 건수를 늘려 수임료를 올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패키지 고소도 등장했다고 한다. 패키지 고소는 시간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여러 고소장을 내는 방식이다. 그동안 피해자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커진다. 피해자가 여럿인 경우 이들 사이의 협력을 방해하기도 한다. 김 연구원은 “무고와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글 삭제 가처분신청, 모욕,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여러 종류의 법적 대응 방안이 일종의 패키지 형태로 팔리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보복성 역고소는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무고죄로 기소됐다 2년8개월 끝에 무죄확정 판결을 받은 성추행 피해자의 사례를 제시하며 “무죄 사실은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피해자를 ‘무고녀’라고 했던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미투 운동에 불쾌감과 억울함을 토로하며 피해자를 폄하하고 꽃뱀을 찾아내는 데 몰두하는 양상을 낳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익명 신고를 선택하는 피해자들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8일 개설된 성희롱 익명신고 시스템에는 매일 3∼4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17일까지 모두 114건이 접수됐다. 한 빌딩 관리사무소 경리는 “식사하자” “만나자”는 관리사무소장의 요구에 시달리다가 결국 익명으로 신고했다. 익명 신고 중에는 언어·신체 성희롱이 109건(95.6%)으로 압도적이었고 성폭력을 수반한 사건도 5건(4.4%) 있었다.
허 조사관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기로 돌아간다면 차별이 지속되고 불평등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연 정현수 기자
jaylee@kmib.co.kr
성폭력 가해자의 ‘2차 가해’… 기획고소 확산
입력 2018-04-20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