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맡긴 시설서 연락받은 부모, 늑골 골절 등 구타 의심됐지만
경찰 “CCTV 없어 수사 쉽잖아”
2015년 255곳 대상 조사 결과, 폭행·체벌 40건 드러나
이용자 7∼8%가 “맞은 적 있다”
“니들이 이러니까 장애인 소리를 듣는 거야.”
경기도 고양의 한 성인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내부의 핸드벨 연주단체 리더 A씨는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연주가 엇나가면 “장애인증을 복사해서 이마에 붙이고 다녀라”고 윽박질렀다. 말레트(종치는 도구)로 장애인 연주자의 머리를 때리고 오리걸음을 걷게 하거나 오토바이 자세를 시켰다. 19일 경기북부장애인인권센터와 고양시청 장애인시설팀 조사 결과 이 거주시설에선 이런 신체적 정신적 학대가 10년 이상 반복돼 왔다.
장애인 시설에서 학대와 성폭행이 장기간 반복된 이른바 ‘도가니’ 사태로 광주 인화학교가 문을 닫은 지 7년이 지났다.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진 최악의 학대에 온 국민이 분개했다. 장애인과 아동을 성폭행하면 전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됐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이 장애인들을 옥죄는 비상식적 상황은 여전하다. 시설 위주의 장애인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탈시설 운동’이 불거진 이유다.
국민일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 조사 결과(2011∼2017년)’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시설 내에서 폭행과 학대가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1년에 장애인 거주시설 200곳을 조사한 결과 폭행과 체벌, 학대 등이 23건 발생했다. 2012년에는 101곳을 조사해 24건의 폭력·학대(체벌 등)를 적발했다. 2014년에는 장애인 거주시설 602곳을 전수조사해 폭행 26건과 체벌 8건을 찾아냈다. 255곳 시설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된 2015년에도 폭행과 체벌이 40건 드러났다. 최근 2년간 조사 결과에서 ‘나는 맞은 적이 있다’고 답한 시설 이용인은 전체 응답자의 7.6%, 8.1%나 됐다.
서울의 한 중증장애인 시설에서는 이곳에서 생활하던 성인 장애인이 골절과 타박상을 당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설 원장은 지난 1일 이곳에서 생활해온 지적·지체장애 1급 진우(22)씨가 갑자기 배가 부풀고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며 가족에게 연락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달려온 부모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약을 사 먹였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 밤 부모는 진우씨를 데리고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진우씨 대장의 일부인 결장이 손상되고 늑골 골절, 복벽 타박상이 있다고 진단했다. 진우씨를 진료한 의료진 중 일부는 “공식 의견은 아니지만 외력에 의한 피해가 의심된다”고 했다.
부모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원인을 밝히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시설 내에 CCTV도 없어 수사가 쉽지 않다”며 “시설 관련자들과 주변인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밝혀진 건 없다”고 했다. 시설 운영진도 진우씨가 왜 다쳤는지 알지 못했다. 진우씨 아버지 이모(52)씨는 “아들이 장애가 심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어떤 이유든지 아이의 몸이 망가지는 과정을 시설에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이 집단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과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들을 지시하고 통제하는 시설 관리자와 위계관계가 된다.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해외의 각종 연구 결과는 장애인들을 이런 시설에서 보호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발달해 나갈 기회를 차단하고 억압하며, 신체 및 심리적 발달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는 이유다. 시설 장애인들의 삶을 추적 연구한 제임스 콘로이 미국 성과분석센터 원장은 오랫동안 시설에서 자라온 장애인은 감정조절이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17년 사단법인 두루가 발표한 ‘장애인 탈시설 방안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에도 “시설 생활로 무기력감에 빠진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38.2%였다.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는 응답도 39.1%였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두렵다”거나 “내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각각 44.5%, 43.0%였다(복수응답). 장애인 시설이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거주시설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시설을 폐쇄하는 추세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08년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서비스와 지원법’을 제정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역사회에 참여하도록 복지 시스템을 정비했다. 스웨덴은 1993년 장애인 지원 및 서비스법을 제정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1997년에는 특수병원 및 요양시설 폐쇄법이 제정되면서 모든 시설이 폐지됐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에게 최적화된 사회화 시스템이 무엇인지도 합의하지 못했다.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제약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오랜 시간을 시설에서 보낸 장애인의 삶도 더 연구해야한다”고 말했다.
탈시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걸음마 단계다. 지역사회에 융화시키기 위한 실험적 모델만 제시된 상태다.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탈시설을 희망하는 사람을 발굴해 중간 거주단계인 자립생활 주택을 지원하는 서울시 같은 모델이 필요하다”며 “탈시설 장애인의 70%가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에 지역사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장애인 단체들도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불거진 이후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 조사가 매년 진행됐지만 문제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가 꾸준히 개선됐다지만 아직도 많은 불편과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면서 “탈시설과 같은 국정과제가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장애아동 부모들도 탈시설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두고 있는 장현아(52)씨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분리와 배제를 하는 곳”이라며 “아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시설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인권침해와 폭력 문제를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고 덧붙였다. 자폐 장애아를 키우는 우정원(48)씨도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성인이 되면 시설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장애인들은 스무 살이 되면 더 큰 사회와 마주하면서 성장해나가는 반면 우리 자녀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시설에서 닫힌 상태로 지내야 하느냐”고 말했다. 우씨는 “이제 우리 아이도 4년 남았는데 시설생활은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인화학교 사태란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 광산구 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폭행과 성폭력이 벌어진 대표적 장애인 시설 학대 사건이다. 학교장과 행정실장이 일부 학생들을 성폭행했지만 범죄 발생 5년 동안 범죄 사실이 은폐됐다.
이택현 이사야 심우삼 기자 alle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학대 파문 그때뿐… 인화학교 사태 7년, 여전히 우는 장애인들
입력 2018-04-20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