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공격 이후 인기 상승… 국가 비상사태 탓 야권은 무력
조기 선거 땐 승리 가능성 높아 일당독재 연장 위해 선수 친 듯
‘술탄’의 권좌는 어디까지 높아질까. 집권 15년째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4) 터키 대통령이 일당독재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대외갈등을 명분으로 선거를 1년 반이나 앞당기면서 더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쥘 태세다. 에르도안은 18일(현지시간) 국회 대표들과 회담 뒤 수도 앙카라에서 한 연설에서 내년 11월로 예정돼 있던 대선과 총선 일정을 오는 6월 24일로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에르도안은 “대통령과 정부가 힘을 합해 일하고 있지만 발걸음마다 구체제의 질병에 가로막혀 있다”며 “시리아 등의 상황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더 강력하게 이끌 새 집행체제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가 이대로 치러질 경우 에르도안과 여권의 승리가 유력하다. 과반에 못 미치는 40%대인 에르도안의 지지율을 볼 때 결선 투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패배 가능성은 낮다. 최대 야당인 공화국민당(CHP)과 지난해 새로 출범한 ‘선한당(Good party)’도 아직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다.
더군다나 터키는 2016년 7월 쿠데타 사태 이후 줄곧 국가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어 야권이 제대로 된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에르도안의 발표 직후 의회는 비날리 을드름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가 비상사태를 3개월 추가 연장했다.
에르도안은 지난해 4월 국민투표에서 51.4%를 얻어 개헌안을 간발의 차로 통과시켰다. 현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꿔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부통령직을 만드는 한편 의회의 권한은 축소시켰다.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과 여권이 이기면 사실상 일당독재가 가능해진다.
서방 언론들이 보는 이번 조치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본래 일정인 내년 11월까지 경제상황이 버텨줄 가능성이 낮기에 쿠르드 반군이 있는 시리아 아프린 지역 점령으로 지지율이 높은 지금 독재 연장을 위해 선수를 쳤다는 분석이다.
터키 경제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7.4% 오르는 등 얼핏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곪고 있다. 단적인 지표는 터키 리라화 가치 폭락이다. 리라·달러 환율은 올해 오름세 끝에 이달 달러당 4리라를 넘어섰다. 비상사태 선포 전이던 2016년 3월 2.81리라였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에르도안이 은행에 이자율을 낮추라고 압박해 억지로 경기를 부양한 결과다.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거품경제라는 얘기다.
국제사회에서 에르도안의 권력 강화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가입자격 문제로 수년째 갈등을 빚고 있는 유럽연합(EU)과의 사이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에르도안의 독재와 법치 훼손이 터키의 가입을 어렵게 만든 핵심 이유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터키가 그리스 군인을 억류하면서 둘 사이 관계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에르도안은 시리아 사태 국면에서도 서방의 골칫덩이다. 터키군은 같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미군의 동맹군인 쿠르드족 반군을 적으로 규정하고 지난달 시리아 북부 아프린에서 몰아낸 상태다. 이와 함께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정부군 편인 이란·러시아와 휴전협상을 하는 등 독자 행동을 일삼고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15년 철권’ 터키 에르도안 “6월 조기 대선” 기습 선언
입력 2018-04-19 18:53 수정 2018-04-19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