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아웃에 버젓이… LG 비신사적 ‘사인 훔치기’ 논란

입력 2018-04-19 18:57 수정 2018-04-19 23:20
1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가운데 LG 덕아웃 복도 벽에 KIA 투수들의 구종별 사인이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있다. 야구계에서는 LG의 이 같은 행위를 일종의 사인 훔치기라고 보고 비판하고 있다. 뉴시스

덕아웃 복도에 구종별로 상세히 게시
KBO “비신사적”… 20일 상벌위 개최
류중일 “현장 책임자로 죄송” 사과
불미스런 의혹 속 3연전 모두 패배


“비신사적 행위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고문은 18일 LG 트윈스가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를 앞두고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덕아웃 복도에 KIA 배터리의 사인을 게시한 일을 두고 19일 이같이 말했다. LG가 붙인 A4용지에는 KIA의 포수가 투수에게 구종과 코스를 주문할 때 손가락을 몇 개, 어떤 방향으로 펴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김 고문은 “1루 주자가 도루를 위해 사인을 본다거나, 2루 주자가 타자에게 사인을 가르쳐 주는 것은 매우 비신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선수와 감독들이 ‘이런 일을 하지 말자’고 한 적도 있었는데 다시 이 문제가 불거졌다”고 덧붙였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2014년 4월 “사인 훔치기를 비롯, 상대팀으로부터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자”고 의견을 모았었다.

과거 프로야구계에서는 상대의 사인을 간파하는 것이 기술로 통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자서전 ‘김성근이다’에서 “OB 베어스 감독으로 있을 때 삼성 라이온즈와 싸우면 성적이 좋았다. 상대 포수 팔 근육의 움직임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전 감독은 “손가락 하나를 펴느냐 두 개를 펴느냐에 따라서 팔 근육이 달라진다. 그걸 읽어내니까 경기를 하면 결과가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대팀의 사인을 엿보는 것은 비겁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사인 훔치기 의혹이 빈볼(위협구)로 이어지는 사례들도 있었다.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변호사)은 2014년의 결의에 대해 “상대를 자극하면 선수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매너’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라고 했다.

LG의 이번 행위는 ‘불공정 정보’ 입수를 금지하는 KBO리그 규정 제26조에 반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규정은 벤치와 코치,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 투수의 구종을 전달할 수 없게 한다. 경기 중 벤치 이외의 곳에서 수신호나 문서를 전달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이를 위반한 당사자는 경기장 밖으로 퇴장 당한다.

KBO는 20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LG의 리그 공정성 훼손 여부를 따질 계획이다. 전례 없이 노골적인 문서로 상대팀 사인을 공유했다는 점은 비판 여론을 키운다. LG는 신문범 LG스포츠 대표이사 명의로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팬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릴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이었음을 통감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류중일 LG 감독은 이날 “현장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류 감독도 “그런 걸 붙여두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LG는 KIA의 사인을 훔쳤다는 의혹 속에서 KIA와의 3연전을 모두 패했다. KIA의 에이스 양현종은 9이닝을 완투하며 팀의 8대 4 승리를 이끌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