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전 옛 동독에는 3000여개의 은행 지점이 있었고 주민의 80%가 금융을 경험했다. 반면 북한엔 금융이 없다시피 하다. 은행 예금을 이용해본 사람은 전체의 3.8%에 불과하고 개인대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면 제일 어려운 게 금융 관련 신용 관리다. 금융 문외한인 북한이탈주민의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 비중이 비슷한 소득 수준의 남한 사람보다 3배 이상 높았다. 90일 넘게 연체하는 채무 불이행 비율도 배 이상 높았다. 탈북민 신용 관리를 도울 강력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19일 나이스신용평가와 함께 ‘북한이탈주민의 신용 행태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3만명 규모의 탈북민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3161명의 신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장기 추세를 살피며 연체와 채무 불이행 여부를 실증한 최초의 연구다. 탈북민은 여성 비중이 65%로 남성보다 높다. 연소득은 평균 2500만원 수준이다. 논문은 유사한 소득에 인구학적 특성을 가진 남한 사람 3161명의 신용 정보를 ‘대조군’으로 삼아 비교했다.
탈북민 가운데 고신용자(1∼3급)인데도 저축은행, 대부업체, 카드론 등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받는 비중은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12%나 됐다. 대조군(4%)에 비해 3배 많은 수치다.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데도 연 20%가 넘는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 것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남한 사람처럼 다급할 때 친족이 돈을 빌려주는 ‘엔젤 파이낸싱’ 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탈북민이 남한 금융에 적응하며 일시적 연체는 차차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채무 불이행만큼은 평균 0.38건으로 비슷한 남한 사람(0.18건)보다 배나 많았다. 논문은 채무 불이행을 ‘신용카드 대금이나 대출금의 90일 이상 연체’로 정의했다.
특히 탈북 남성이 여성보다 신용 관리를 못했다. 북한에서 남성은 10년 이상 군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보다 장마당 등 시장경제를 접할 기회가 적은 게 원인으로 꼽혔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법률에 따라 인종별 신용점수와 대출 상관관계를 따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이 차별을 받는지 검증하는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며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금융생활 적응과 신용도 회복을 돕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융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금융 교육 부족… 高신용 탈북민도 고금리 대출
입력 2018-04-19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