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위기에도 필리핀 선교지 지킨 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의 힘”

입력 2018-04-20 00:01

2013년 11월 8일 오전 4시(현지시간). 4∼6m 높이의 해일을 동반한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레이테섬 타클로반을 덮쳤다. 당시 현지에서 사역을 준비하고 있던 김영환(51·타클로반 한인감리교회·사진) 목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2층짜리 빌라 1층에 갑자기 바닷물이 밀려들어 2층으로 대피했다. 김 목사는 가족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며 기도하다 임종예배까지 준비했다. 다행히 물은 2층을 넘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이때 태풍으로 6000여명의 사망자와 1000여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지만 김 목사는 그곳을 버리지 않았다. 2015년부터 현지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급식, 한국어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7일 김 목사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났다.

그가 필리핀으로 돌아간 것은 출국 전 만난 현지인들의 간청 때문이었다. 한 현지인은 “한국에 오래 계시지 말고 다시 건너와서 도와 달라”며 필리핀 지도가 그려진 옷을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때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에게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환상을 보고 그들에게로 떠나는 사도행전 16장 9절의 장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가 소속된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는 이 같은 사정을 알고 현지 선교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고 2015년 6월 타클로반선교센터가 완공됐다.

이후 선교센터 앞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본격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점심 150여명의 아이에게 쌀밥과 닭고기로 만들어진 영양식을 제공했다. 한국어 무료 학교도 열었다. 현지인 교회 리더 90%는 이곳에서 나왔다. 가족 네 명으로 시작한 교회 역시 인원이 점차 늘어 140여명이 됐다. 교인 대다수는 현지인 10∼20대다.

하지만 최근 열악한 재정 때문에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무료급식을 하려면 열흘마다 쌀 50㎏, 매주 닭 12마리를 사야 한다. 최근에는 생활비까지 투입해야 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돼 매주 급식을 제공하기 힘겨운 상황이다.

이 같은 형편에도 김 목사는 무료진료소와 빈민 아동을 위한 공부방도 계획 중이다. 그는 “현지 의료선교, 공부방 마련, 무료급식 등 해야 할 일이 많아 교회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며 “선교센터와 이곳 아이들이 필리핀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구자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