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철도역 ‘사랑의 편지’ 떼낼 뻔 했어요

입력 2018-04-21 00:01
류중현 교통문화선교협의회 대표(오른쪽)가 19일 서울지하철 삼각지역 내 이 단체 사무실에서 함동근 전국회장과 함께 ‘사랑의편지’ 사역을 돕는 전국 회원교회 명단을 가리키고 있다.
사랑의편지
시(詩) 항아리
㈔교통문화선교협의회(교선협) 대표 류중현 목사는 19일 깊은 감회에 젖었다. 전국 지하철과 철도역 1000여곳에 걸린 ‘사랑의편지(loveletters.kr)’가 설치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70대 중반 노(老)목회자의 얼굴에 감동이 묻어났다.

“짧은 글이지만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나 어울리는 그림을 더해 오가는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4년 전부터 ‘시(詩) 항아리’도 설치해 사랑의편지를 두루마리 쪽지 형태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울지하철 삼각지역에서 만난 류 목사는 “사랑의편지는 교회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그 흔한 전도 문구가 없다. 매달 한두 번 내용이 바뀌는데, 삶에 대한 소망이나 긍정적인 내용 위주”라고 밝혔다. 이어 “이 일을 시작한 건 삶에 지친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함”이라며 “이를 교회가 나서서 해보자는 것이었고 또한 그게 교회의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하철 사랑의편지는 힐링 공간이다.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잔잔한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3년 전 남자친구와 안 좋게 헤어진 여성은 ‘용서’라는 글을 읽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며 감사전화를 했다. 한 중년 남성은 “대학에 재수하기 위해 집을 떠난 아들이 갑자기 돌아와 자동차정비를 배우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지하철 사랑의편지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내용을 읽고 진로를 변경하게 됐다고 했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제주도 목회자는 사랑의편지를 읽고 감동했다며 소정의 후원금을 보내왔다. 자신의 삶 속에서도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50대 장로의 고백도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활용하기도 한다.

40대 수용자는 교도소에서 사랑의편지 단행본을 읽고 “제 아내에게 한 권 보내 달라”며 “비록 죄를 짓고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더 지탱하고 견뎌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내왔다.

별별 에피소드가 많다. 류 목사는 “모 인물이 실린 사랑의편지를 읽은 한 시민이 찾아와 ‘그 사람 매국노인데 왜 실었느냐’고 욕을 해대는 걸 꾹 참아야만 했다”며 눈물을 쏟았던 사연도 털어놨다.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서울시가 사랑의편지 액자를 철거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다. 지하철역 안에 설치물이 많은 데다 사랑의편지가 ‘종교 편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사랑의편지에 종교색을 삭제해온 교선협 입장에선 황당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 뒤 철거 계획이 없다는 서울시의 해명이 있었다. 사랑의편지가 그동안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행히 철거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교선협 전국회장 함동근 목사는 “언제 다시 철거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번은 사랑의편지 액자를 전달하러 지방에 갔는데, 역장 반대로 끝내 붙이지 못했다. 류 목사는 6시간 넘게 기다리는 동안 허전함이 밀려왔다고 했다.

협의회는 이밖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하철 내 금연운동, 선하차 후승차 운동, 친절운동 등 기초질서와 친절문화 캠페인을 전개한다. 어버이날 꽃 달아드리기, 부활절 계란 나눠주기, 성탄열차 및 성탄트리 설치도 절기마다 펼친다. 무료 이미용 봉사와 함께 유휴공간을 활용한 음악회, 전시회 등 문화행사도 열어 호응을 얻었다.

함 목사는 “하루 1000만명이 읽는 사랑의편지는 모름지기 한국교회의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국 모든 교도소에 사랑의편지 단행본을 배포할 예정”이라며 “지하철공사 및 철도공사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전국 1000여 회원교회와 함께 아름답고 깨끗한 지하철문화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