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日영사관 앞, ‘소녀상’ 이어 ‘강제징용자상’ 갈등

입력 2018-04-20 05:00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지난 17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서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강제징용노동자상 뒤로 2006년 12월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보인다. 뉴시스

시민단체 내달 제막식 추진… 외교부·市 “위치 부적절”
외교문제·불법시설물 이유 강제동원역사관에 설치 권고
소녀상 철거 마찰도 여전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부산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추진, 정부 및 지자체와 마찰을 빚고 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일제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부산운동본부는 다음 달 1일 일본영사관 앞에서 높이 2m 규모로 제작된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전쟁범죄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뜻을 담은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일본으로 끌려가 갱도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온 조선인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지난해 9월부터 시민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한 1억700여만원으로 제작했다.

문제는 노동자상의 설치 위치다. 시민단체들은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세우겠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외교부는 최근 시민단체에 공문을 보내 “일본영사관 앞 설치는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한 국제 관행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고 실제 제막이 이뤄지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희생자 추모, 후세 역사교육 등의 필요성을 들어 남구 대연동에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쪽에 설치를 권고했다.

부산시는 “노동자상이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되면 도로법상 불법인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고, 부산 동구도 “시민단체가 노동자상을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할 경우 평화의 소녀상처럼 불법 시설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산시는 “영사관 앞 도로 점용 허가나 도로 관리는 구청에 위임돼 있다”고 했다.

동구는 “노동자상 설치 문제는 외교부와 부산시가 풀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일본영사관 앞 설치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시민단체가 강행할 경우 추후 관리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다.

시민단체 측은 “일본 정부는 우리 국민을 강제로 끌고 가 노역시킨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며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예정대로 제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앞으로 서울 2곳(국회 앞, 일본 대사관 앞)과 광주역에도 각각 노동자상을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앞서 시민단체가 2016년 12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도 불법 시설물 논란을 빚으며 철거와 존치를 놓고 아직까지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