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H공사, 박원순 책 사줬다… 市산하기관들 단체 구매 정황

입력 2018-04-18 18:31 수정 2018-04-18 23:42
SH공사 전직 간부가 국민일보에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 지난해 3월 변창흠 당시 SH공사 사장이 박원순 시장 책 구매와 관련해 간부에게 보낸 것이다. 메시지 캡처

前 간부 “150권 샀는데 사장이 50권만 받고 나머진 시장실서 쓸 것이라고 얘기”
구매에 시장실 개입 의혹도… 김영란법 위반 가능성
비서실 “책 구매 요청 안해… 시장실로 책 온 적도 없어”


서울시 산하기관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책을 단체로 구매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산하기관에서 산 책 중 일부를 시장실에서 가져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거복지·도시재생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전직 간부는 최근 국민일보에 “지난해 3월 변창흠 SH공사 사장의 지시로 박 시장의 책 ‘박원순, 생각의 출마’ 150권을 구매했다”고 밝히고 당시 변 전 사장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변 전 사장은 지난해 11월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변 전 사장이 지난해 3월 6일 보낸 것으로 돼 있는 이 메시지에는 ‘생각의 출마’ 책 표지와 함께 “시장님 출간 서적을 우리 공사 차원에서 100권 구입 배포 가능한지 확인해 주세요”라는 주문이 적혀 있다.

전직 간부는 “사장 메시지를 받고 해당 부서에 지시해 출판사에서 책을 구입하게 했다”며 본인이 변 전 사장에게 보낸 “변 사장님 책 결제액은 84만원입니다. 아래 (출판사) 계좌로 부탁합니다”란 메시지도 공개했다.

당시 박 시장 책을 구매한 건 SH공사만이 아니다. ‘생각의 출마’를 출판한 더봄출판사 측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서울시 산하기관 서너 곳에서 20권씩, 30권씩 책을 샀다”고 말했다.

변 전 사장이 책 구매를 지시한 시점은 출간 직후다. ‘생각의 출마’는 박 시장의 대선공약집으로 지난해 3월 초 출간됐다. 책이 나올 당시 박 시장은 이미 대선 경선 출마를 포기한 상태였다. 출판사 측은 “참모들과 함께 오랫동안 준비했던 공약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남겨서 다른 후보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하자는 차원에서 책을 낸 것으로 안다”며 “책은 1000권을 인쇄했고 다 팔리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책 구매에 시장실이 개입한 의혹도 있다. 전직 간부는 “변 전 사장이 처음엔 100권을 사라고 했다가 나중에 150권을 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100권은 시장실에서 쓸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우리 직원이 그걸 모르고 150권을 달라고 출판사에 얘기했다가 변 전 사장에게 연락이 가서 다시 나한테 50권만 받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변 전 사장은 책 구매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박 시장 책에 주거복지나 도시정책 관련한 공약도 들어 있어서 우리 직원들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구매하라고 했다”면서 “시장실의 지시를 받고 책을 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150권 중 50권만 받으라고 지시한 카톡 메시지에 대해서는 “그런 메시지를 보낸 기억이 없다”고 답변했다.

박 시장 비서실 관계자는 “시장이나 비서실에서 산하기관에 책 구매를 요청한 적은 없다. 시장이 그동안 책을 여러 권 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책 일부를 시장실에서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시장실로 그런 책이 배달돼 온 적이 없다. 출판사에도 확인해 보니 시장실로 책을 보낸 적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공직자인 서울시장의 책을 시 산하기관에서 사주는 행위는 자발적이라고 하더라도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간부는 “인사치레나 관행으로 시장의 책을 산하기관 대표가 사줄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김영란법’에서 정한 선물비 한도인 5만원을 넘어간다면 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