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허브 옮겨 심기’ 등 몰입 우울증·스트레스 감소 효과 탁월
경기지역암센터에서 암 투병을 하던 A씨는 오랫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암 치료가 길어지면서 찾아온 탈모가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잿빛이던 A씨의 삶에 희망이 싹튼 것은 농촌진흥청의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만나고 나서였다. 한 주에 한 번씩 8주간 이어진 원예활동은 오랫동안 괴롭혀 오던 우울감을 몰아냈다.
원예활동 프로그램의 시작은 ‘잔디인형 만들기’다. 민머리 인형에 잔디를 심는 과정에 감정이 이입됐다. 물을 주면 마치 머리가 나는 듯 잔디가 자라났다. 다음으로 ‘허브 옮겨 심기’를 했다. 식물을 옮겨 심을 때에는 잘 자라도록 불필요한 뿌리를 잘라내는 게 핵심이다. 몸 안에 있는 암 덩어리를 잘라내는 걸 연상케 한다. 3주 정도 지나자 허브는 건강하게 자랐다. 이어지는 작업은 꽃꽂이를 하면서 버려지는 꽃을 모아 컵받침을 만드는 것이다. 잘려나가거나 버려지는 것들도 쓸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컵받침에 예쁜 잔을 올리고 허브차를 마신다. 허브 잎은 직접 허브에서 딴다. 마지막으로 선인장으로 작은 정원을 만든다. 악조건에서도 잘 버티고 자라는 선인장을 보며 위안을 얻는 체험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치유 농업’의 효과가 입증됐다. 농진청에서 70명의 참여 환자에게 설문했더니 우울감은 평균 45%, 스트레스는 34% 줄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채취한 혈액과 끝난 후 채취한 혈액을 비교했더니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40% 증가했다. 세로토닌은 많이 분비될수록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 2015년 8∼12월 암 환자를 대상으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이상미 농진청 농업연구사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환자들이 ‘오히려 암 걸리기를 잘했다.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등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고 전했다.
농진청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9∼10월 전국 6개 농장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치유 농업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참가한 성인들의 혈액에서 ‘코티졸’이 22%나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됐다. 코티졸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린다. 아이의 경우 긴장감이 평소보다 76%나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농진청은 ‘치유 농업’을 산업으로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치유 농업 정착을 위한 법 제정, 인력 양성 등 인프라를 구축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치유농업’으로 우울증 날리는 암환자들
입력 2018-04-1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