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포스코와 KT 회장 자리는 정권의 전리품 아니다

입력 2018-04-19 05:00
공정과 정의를 내세운 문재인정부는 다를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임기 2년을 남겨두고 18일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황창규 KT 회장은 전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지난해 3월 연임한 두 사람이 수난을 당하는 모습은 역대 정권들에서 봤던 것과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들 기업의 CEO는 시민단체 고발→경찰 압수수색→국세청 세무조사→사퇴 수순을 밟았다. 언제까지 이런 구태를 봐야 하는지 참담하다.

권 회장은 박근혜정부 때 최순실 게이트와 이명박정부 때의 자원외교 지원 등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황 회장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KT가 법인자금으로 국회의원 90여명에게 4억3000만원을 불법 후원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아무리 능력 있는 CEO라도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이들 기업에 대한 사정 당국의 수사가 전 정권 때 임명된 CEO를 몰아내고 자기 사람을 앉히기 위한 불온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해서도 물러나지 않자 2013년 10월 검찰이 참여연대가 8개월 전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한다며 KT 본사 등 16곳을 싹쓸이 압수수색하는 식으로 퇴진을 압박했다.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해 13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했지만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권 회장의 전임자인 정준양 포스코 전 회장도 연임에 성공하고도 2013년 11월 국세청의 세무조사 압박 속에 물러났다. 정 전 회장은 포스코 민원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11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포스코와 KT는 각각 2000년과 2002년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없다. 외국인 지분율은 각각 57%와 49%에 달한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멀쩡하던 CEO가 물러나고 있으니 외국인 주주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했다. 이들 기업은 민영화된 지 20년이 다 돼 간다. 아직도 포스코와 KT 회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적폐는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