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야구지만 한국 야구의 원로 김인식(71)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고문이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선수들은 더욱 발전해야 하며, 심판들은 권위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김 고문의 시각이다. 그는 “선수, 심판, 지도자, 구단의 사장과 단장 모두가 더 잘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김 고문과 국민일보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잠실구장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그는 느릿한 어조로 민감한 현안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보며 그저 부러웠으며, 한국 야구도 투수를 제대로 조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제자 류현진(LA 다저스)에 대해서는 “지난해와 달리 회초리를 때리듯 경쾌하게 던지더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올 시즌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 선수들이 많은 불만을 표출한다.
“잘못 보는 경우도 때로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화가 날 것이다. 심판이 의도적으로 잘못 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선수도 감독도 참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에게 항의한 뒤 퇴장을 당하면 이후의 시합에도 나설 수 없게끔 몇 게임씩 출장정지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프로야구(MLB)의 경우 대개 그 시합 안에서 끝나는데, 이 문제를 KBO도 새롭게 다뤄봐야 한다.”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면 시합이 너무 늘어진다. 볼 판정 외의 부분에서는 심판들이 비디오 판독 덕분에 편하게 됐다. 잘못 보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디오 판독 결과 판정이 뒤집히면 심판에겐 자책과 반성이 필요하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같은 표현도 하는데, 이건 심판 본인이 해서는 안 되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제삼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일관적인 판정을 바라는 팬들의 바람은 오래됐다. 심판 문제는 개선되고 있다고 보나.
“프로야구 출범 초창기에는 감독이 심판에게 주먹질을 하다 구속된 사례도 있었다. 1990년대에는 심판이 선수에게 반말을 했다. 그런 것들을 거쳐 지금은 발전하는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권위의식을 버리는 것이다. 일부 고참 심판들에게는 그 권위의식이 조금 배어 있을 수도 있다. 심판 문제는 빅리그에서도 불거진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2014년부터 한국 프로야구는 뚜렷한 타고투저다.
“투수가 약하기 때문에 홈런이 많이 나오고, 잘 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센 투수가 나오면 하나도 못 친다.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하는 것은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답이 못 된다. 국제 대회에 나가서도 스트라이크존을 넓혀 달라고 할 것인가? 스트라이크존 이야기는 투수가 약한 팀들이 제기하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타고투저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인가.
“실력을 늘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의아한 점은 하나 있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국제대회에 나가 보면 미즈노 등 일본의 공인구로는 연습타격 때에도 국내만큼의 비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국내 프로야구 공인구의 반발력을 체크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문으로서 KBO에 지속적으로 공인구 체크를 건의하고 있다.”
-팀마다 정규시즌 144경기를 치르는 것은 무리라는 현장 의견이 있다.
“144경기가 현실적으로 무리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로 선수들의 연봉이 많이 높아졌다. 신인이 활약하면 2년차에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한다. 비용이 이미 큰데 시합을 줄이면, 수익은 어떻게 얻을 것인가. 시합 수를 줄이려면 선수들의 연봉도 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건 말이 안 되고, 10개 구단 이사회가 의논해볼 필요는 있겠다.”
-지금 KBO 선수들의 연봉에 ‘거품’ 사례가 있나.
“거품도 있다. 구체적으로 거론하진 않겠다. 이것은 각 구단의 사장 수명이 3∼5년에 그치는 데서 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기간에 성적을 내기 위해 터무니없이 돈을 많이 쓰곤 한다. 딴 데서 100원에 파는 초콜릿을 200원, 300원 주고 사먹는 경우도 있다. 경영으로서는 ‘꽝’이며, 문책 받을 일이다. 사장이나 단장이 10년씩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그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선수들은 과거에 비해 발전하지 않았나.
“류현진(2006년 한화 이글스), 김광현(2007년 SK 와이번스) 데뷔 이후 상대팀이 ‘아휴, 쟤가 던지면 싫다’ 하는 압도적인 투수들이 10년 넘도록 등장하지 않는다. 타자들은 90년대에 비해 대형화가 되긴 했다. 스트라이크존 높은 코스에 들어오는 시속 140㎞대 공은 과거보다 훨씬 멀리 강하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낮은 코스, 코너워크가 된 공은 못 친다.”
-우리는 왜 대형 투수 기근일까.
“볼을 많이 던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볼을 강하게 던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집중력, 마운드 운용 능력을 학생야구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일본은 계속 대형 투수가 나오고 MLB에 진출한다. 오타니가 올해 큰 활약을 한다.
“그간 국제대회에서 만난 일본의 여러 투수 가운데서도 오타니가 가장 강력한 포크볼(스플리터)을 던졌다. 벤치에서 보기에도 몸이 넘어오고 순간적으로 메어치는 동작이 빨랐다. 하체 훈련이 잘 돼서 그렇다. 오타니에게 삼진을 당하고 들어오는 우리 타자들은 ‘타이밍을 못 맞히겠다’ ‘분명 스트라이크로 보였는데 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일본의 투수 조련 시스템이 체계적인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일본 투수들은 한국보다 많은 볼을 던지면서도, 그 외적인 훈련을 정말 많이 한다. 계단을 뛰고 산을 뛰는 기초체력 훈련이 우리의 몇 배다.”
-매일 프로야구 경기를 볼 것이다. 높이 평가하는 후배 감독이 있나.
“감독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단순히 팀의 순위로 따질 게 아니라 갖춰진 전력에 비해 어떤 결과를 냈는지 평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부산 팬들은 어떤 생각일지 모르지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치켜세운 것은 잘못됐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는 홍성흔 이대호 조성환 황재균이 모두 있었다. 한국시리즈에 가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감독은 가을야구를 이뤘다며 환영을 받았겠지만, 롯데로서는 아쉬웠을 것이다.”
김 고문은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은 물론 사회인야구팀이 출전하는 일본도 만만히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보다는 선수단 구성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강정호가 있었다면 WBC의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강정호는 2016년 음주운전으로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겨울 도미니카공화국 윈터리그에서 뛸 때 김 고문에게 ‘연락 못 드리고 와서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에는 연락이 없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김 고문에게 류현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감독님!”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김 고문은 호투를 칭찬하면서도 “왜 몰려서 홈런을 맞았느냐”고 질책했다. 류현진은 승리투수가 될 때마다 김 고문에게 전화를 건다. 김 고문은 통화를 마치며 “이제 열세 번 남았다”고 말했다. 노감독은 애제자의 15승을 예상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김인식, 한국야구를 말하다… “선수 몸값에 거품, 심판은 권위의식”
입력 2018-04-18 18:44 수정 2018-04-19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