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성동규] 드루킹의 댓글조작과 언론자유

입력 2018-04-19 05:03

연일 핫이슈로 보도되고 있는 소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접하면서 지난달에 봤던 영화 ‘더 포스트’의 대사를 떠올려본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初稿)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거다.” 이 영화는 1971년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당시 언론들이 권력의 부당한 압박이나 통제에 맞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물론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달라졌다. 인쇄된 종이신문이나 텔레비전보다는 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 검색을 하고, 그마저도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보다 포털을 찾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신문기사나 뉴스를 소비만 할 뿐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없던 시절과 달리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등장한 ‘댓글’로 인해 누구든지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게 되면서 댓글은 표현의 자유를 확장시키고 언론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보니 국가적 쟁점이 되는 뉴스가 발생할 때마다 댓글의 양도 늘어났고, 댓글 공간을 제공하는 포털 자체가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경우도 더욱 빈번해졌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 김모씨의 경우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표적 포털인 네이버 기사에 달린 정부 비판 댓글의 ‘공감’ 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어 또다시 포털의 사회적 역할과 규제에 대한 해묵은 이슈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과거 댓글의 부작용인 인신공격이나 욕설, 상호 비방 등을 뛰어넘어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향후 상황에 따라서는 현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댓글 폐지부터 실명제 재추진 등 댓글과 관련한 규제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국회에서 입법추진 중인 일명 ‘뉴노멀법’ 등 포털 규제 법안들이 여론을 등에 업고 더욱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사안의 중요성으로 볼 때 이번에야말로 댓글을 둘러싼 주체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표현의 자유와 공론장 보호라는 절대적 가치가 유지되면서 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포털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존립하는 현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댓글 폐쇄 등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방법 대신 기술적인 조작 대응 시스템 등 실질적인 해법을 신속히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 측면에서는 네티즌의 인터넷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기록화된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를 제고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댓글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모두 사람이다. 기술적인 대응 시스템 마련 못지않게 네티즌 스스로 댓글과 관련된 사안을 비교, 분석해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국가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포털 또한 다시 한번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해킹을 다 막을 수 없듯 모든 매크로 프로그램을 다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를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차제에 가짜뉴스 차단에서부터 그동안 삭제한 게시글과 댓글 수, 광고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 청소년 보호 노력 등을 일반 기업들이 하는 ‘투명성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 알리고 네티즌들한테 공동의 노력을 호소해야 한다.

과거 언론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 등과 맞서 싸웠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첨단화된 기술력 뒤에 숨어 가짜뉴스를 만들고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을 하는 새로운 세력들이 언론자유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역사의 초고를 만들 책무가 있기 때문에 결코 그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성동규 중앙대 교수 (신문방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