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방제 92% 비전문가 손에 이뤄지고 부적절한 농약 사용 사례도 69%나 돼
나무에 뿌린 독한 농약이 기체로 변해 숲 찾는 사람 몸 속에 들어갈 가능성 커
기존 나무병원, 자격 요건 낮아 난립 양상… 전문 관리 자격증 갖춘 ‘나무의사’ 도입
내년 첫 배출… 아파트·공원 등 수요 많아
최근 ‘숲세권’이 뜨겁다. 숲과 역세권을 합친 말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등장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5년 주택시장의 7대 트렌드 중 하나로 숲세권을 꼽기도 했다. 집 주변에 있는 녹지가 건강이나 자녀 정서에 좋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녹지를 원하는 현상은 반길 일이다. 다만 녹지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물음표가 붙는다. 아파트에선 봄철이면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방제에 나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무에 생기는 진드기 등 병해충을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약을 써야 하는지, 나무마다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등을 따질까.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전문지식을 원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아파트 관리업체가 위탁업체라면 방제 활동 자체가 불법이 된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자기 소유가 아닌 나무에 방제 행위를 하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때문에 제대로 나무를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제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에 맡긴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나무병원’으로 불리는 산림사업법인조차 오진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된다고 한다. 신규 나무병원이 늘고 있지만 경험이 적어 전문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2014∼2016년 신규로 등록한 나무병원은 251곳에 이른다. 등록 나무병원(478곳)의 절반 이상이 영업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지 않았다. 산림청 관계자는 18일 “나무병원 자격 요건이 높지 않다보니 신규 등록이 최근 급증했다”며 “전문성이 떨어지면서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무 병해충 방제, 92%가 비전문가
산림청이 2015년 실시한 ‘전국 생활권 수목관리 실태 조사’의 결과 보고서는 집 주변 숲 관리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 손에 이뤄진 방제가 전체의 92% 수준이었다.
방제할 때 쓰이는 농약은 더 큰 문제다. 부적절한 농약을 사용한 사례가 69%에 이르렀다. 잘못된 농약을 사용하면 방제는커녕 2차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나무에 뿌린 독한 농약이 기체로 변화하면서 숲을 찾는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비가 와서 씻겨 내려가면 땅에 스며들어 토양 오염을 유발하게 된다. 농약과 같은 화학물질은 사용할 때 엄격하게 규정을 따라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최악의 결과가 무엇인지 드러난 바 있다.
부적절한 농약 사용, 비전문가의 방제 등 문제가 많지만 현행 체제로는 이를 줄이기 어렵다. 산림청 관계자는 “불법 방제의 경우 지방지차단체 소관이라 얼마나 적발했는지 통계를 찾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나무의사’를 도입키로 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우리 주변의 나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를 키우고, 이들에게만 방제 자격을 부여하자는 게 골자다. ‘나무의사’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자격증 ‘나무의사’
나무의사는 산림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나무를 진단하고 처방·치료하는 이를 지칭한다. 학교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정원수 등이 진료 대상이다.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병해충 방제의 역할도 맡는다. 손상된 나무가 있다면 잘 자랄 수 있도록 처치하기도 한다. 나무가 자라는 토양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나무의사의 역할이다. 진단과 처방 외에 지속 관리도 중요한 업무다. 농업은 물론 병충해 관련 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직이 나무의사다.
의사가 있다면 간호사도 필요하다. 이 역할은 수목치료기술사 몫이다. 나무의사가 처방을 하면 직접 농약을 살포하고 토양 관리를 하는 게 수목치료기술사의 주된 업무다.
정부는 특정 자격을 갖춘 이를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 뒤 나무의사와 수목치료기술사를 선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 산림사업법의 세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드는 중이다. 나무의사 자격증은 대학 등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한 뒤 국가자격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주어진다. 수목치료기술사도 전문기관의 교육을 이수한 이들로 한정한다.
정부는 현행 나무병원 관련 등록 기준도 바꿨다. 나무의사와 수목치료기술사가 각각 1명 이상 있어야만 나무병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 기존 나무병원에 종사하는 수목보호기술자나 식물보호기사는 나무의사, 수목치료기술사 자격을 따야만 계속 영업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첫 나무의사의 탄생은 내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 관계자는 “오는 6월 28일 법이 시행되고 나서 시험 기간 등을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에 나무의사 등장 사례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질 좋은 일자리’ 4000개 나올까
새로운 전문직종인 나무의사의 수요는 적지 않다. 산림청은 4000개 가까운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본다. 나무의사, 수목치료기술사가 관리해야 할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아파트만 해도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1만1617개 단지가 들어서 있다. 나무병원 1곳(나무의사 1명, 수목치료기술사 1명)이 20개 아파트 단지를 맡는다고 범위를 정하면 약 58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기게 된다.
가로수 관리도 만만찮다. 전국 가로수는 678만4000그루다. 나무병원 1곳이 2만 그루를 담당하면 일자리 수요는 340개에 이르게 된다. 이밖에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학교 숲’과 일반 학교의 정원수, 공공기관인 시·군·구청의 나무들, 도시공원 등도 나무병원의 관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나무의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91년부터 ‘수목의·수목의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수목의는 나무의사, 수목의보는 수목치료기술사다. 일본의 경우 2016년 기준으로 수목의 2562명이 활동하고 있다. 수목의보는 394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나무의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정부가 지정한 ‘보호수’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국립산림과학원이나 국립수목원의 전문가들이 국유림 관리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국립수목원 오승환 박사는 “보호 대상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And 경제인사이드] 우리 아파트 정원수 돌봐주는 ‘나무의사’ 생긴답니다
입력 2018-04-19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