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노조 와해 의혹’ 수사 부담감 작용… 영향 미친 듯
부정적 사건 잇따르면서 여론 계속 악화될까 우려
직접 고용·노조 인정… 다른 계열사에 파급 가능성
삼성전자서비스가 노동조합을 결성한 협력업체 직원 8000여명을 17일 직접 고용하기로 한 것은 삼성그룹의 오랜 ‘무노조 경영’ 전통에 비쳐볼 때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삼성이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한다’고 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영향도 있지만 최근 안팎에서 감지되는 ‘신뢰의 위기’와 ‘사회적 책임’이 변화를 이끌어 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최근 삼성을 둘러싼 ‘신뢰의 위기’가 태도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연루를 비롯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발견 등 부정적 사건으로 여론이 계속 나빠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부정적 여론이 수개월 뒤에 있을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3심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협력업체 직원 직접고용 결정은 그룹 최고위층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삼성이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검찰의 ‘노조 와해 공작’ 수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많다. 검찰은 지난 2월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과 관련한 삼성전자 본사 압수수색에서 ‘노조 와해 공작’이 담긴 문건 수천 건을 발견한 뒤 이 문제를 적극 수사해왔다. 수년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노조 무력화를 시도해온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서비스가 타깃이었다.
현 정권이 삼성의 노조 대응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 직전 ‘무노조 경영’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부정·배척하는 위헌적 권한 남용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 직접 고용 발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정규직이 되는 협력업체 직원은 앞으로 법적 지위가 확고한 노조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 노조는 근로자 과반수 노조가 돼 임금·단체협약 협상 권한을 가질 게 확실하다. 삼성 계열사에서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노·사 협상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삼성의 노조 대응에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삼성은 1938년 창립 이후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 원칙을 지켜왔다. 삼성은 2011년 복수노조 허용 이후 현실적으로 무노조 경영 방침을 지키기 어려웠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계열사에 8개 노조가 있으므로 무노조 혹은 비노조 경영은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그동안에도 법적 범위 안에서 노조 활동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이 노조를 대하는 태도는 ‘무노조 경영’에 가까웠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단적인 사례는 지난 1월 삼성웰스토리가 노조와의 단체협약 협상권을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위임한 것이다. 삼성웰스토리 노조는 앞서 단체협약체결이 가능한 정규직 노조원 숫자를 확보해 사측에 단협 체결을 요구했다. 협상권이 경총에 위임되자 노조는 “회사가 노조를 존중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반발했다.
다른 계열사 노조는 조합원 숫자가 적은 탓에 제대로 임금·단체협약 협상을 해온 곳이 없다. 지난해 8월 설립된 에스원 노조의 경우 직원 6000여명 가운데 노조원은 40∼50명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 대부분은 사원협의회를 중심으로 임금과 복리후생 조건을 회사와 ‘협의’하고 있다. 사원협의회의 협상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활동 보장은 삼성 다른 계열사의 노사관계와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노조가 없는 계열사에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설립된 노조의 영향력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삼성 다른 계열사의 노조 활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지만 근로자들이 현재 근로조건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근로자를 직접 채용하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삼성, 수사압박·신뢰위기에 ‘노조 인정’… 계열사로 확산될까
입력 2018-04-18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