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무법지대… 투자자 피해 느는데 규제입법 감감

입력 2018-04-18 05:05
법안 3개 몇달째 국회 계류 중 규제 공백 틈타 허위공시 극성
당국 “감독권한 없어” 답답
누적대출액 1년새 2조 급증 “규제 근거 법안 마련을”


안모(54)씨는 2016년 말 P2P(peer to peer·개인 간 거래)업체 A사의 부동산 상품 4개에 약 1000만원을 투자했다. 만기일이 지났지만 이자는커녕 원금도 받지 못했다. A사가 담보로 제시한 부동산에 대해 안씨가 직접 알아보니 해당 부동산엔 근저당권(채무자가 돈을 못 갚을 상황에 대비해 걸어놓은 담보)이 설정돼 있지 않았다. 안씨는 곧바로 금융감독원에 ‘A사가 상품을 거짓 공시했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P2P업체를 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안씨는 지난해 말 피해자 170여명과 함께 A사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사건을 조사 중이다. 안씨는 “P2P금융 사기에 대처하는 방안이 소송밖에 없는데, 개인투자자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P2P금융 규제 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가운데 ‘규제 공백’ 속 일부 P2P업체의 사기성 상품에 피해를 보는 투자자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감독 권한이 없어 발만 구를 뿐이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P2P금융업 관련 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법안들은 P2P업체의 최소자본금이나 영업행위 기준 등을 명시하고 투자자보호 방안을 담았다. 이 중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장 먼저 내놓은 ‘온라인대출중개업에 관한 법률안’은 발의된 지 9개월이 지났다. 통과 여부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P2P업체의 누적대출액은 지난 1년 사이 약 2조원이나 급증했다. 그러나 법안 미비로 투자자들은 항상 피해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통상 투자자가 은행, 금융투자회사 등의 상품에 불만을 가졌을 때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한다. 금감원은 해당 회사에 관련 자료 등을 요청하거나 현장조사를 나간다. P2P업체의 경우 당국의 감독 권한이 없기 때문에 자료 요청조차 할 수 없다.

금감원이 지난해 제시한 ‘P2P금융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은 업체에서 지키지 않아도 처벌 근거가 없어 효력이 떨어진다. 특히 공시되는 연체율·부실률도 업체가 입력하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인지 알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기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은행 상품이나 금융투자상품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금감원이 피해자를 대신해 검찰에 고발한다. 반면 P2P업체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 고소해야 한다. P2P금융이 잘 알려진 개념이 아니다보니 피해자들은 고소 과정에서 경찰에게 P2P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P2P업체에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상담해주는 황호웅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치를 비용이 커서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P2P업체들도 관련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신현욱 P2P금융협회장은 “P2P금융 근거법이 없다보니 불안한 금융 당국이 이중 삼중으로 자율규제안을 내놓는다”며 “업체들은 차라리 법상의 명확한 규제를 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