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는 구세주란 뜻입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이곳에서 생명의 가치는 낮아졌고 아이들은 폭력과 가난에 노출돼 있습니다.”
월드비전 엘살바도르 솔리다리다드 지역개발사업(ADP·Area Development Program) 매니저인 알폰소 알바레즈(28)씨가 지난 1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엘살바도르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엘살바도르는 2015년, 전쟁 중이 아닌 국가들 가운데 살인사건 사망률(인구 10만명당 103명)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는 대부분 갱단의 준동 때문이다. 전체 인구 617만명 중 조직폭력배 숫자는 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 100명 중 1명이 조직원인 셈이다. 이 나라는 또 심각한 빈곤국이다.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900달러로 세계 141위를 기록했다.
폭력과 가난은 가정을 파괴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고등학교 진학률은 도시의 경우 50% 미만, 시골은 25% 수준에 그친다. 어려서부터 범죄조직 가입을 강요받고 조직원이 되는 경우가 많아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환경 조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종익(세상의소금 염산교회) 목사는 월드비전 밀알의 기적 캠페인에 동참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ADP를 통해 꿈을 갖게 된 청년 라몬 이사야 피네다(19·사진)씨를 이날 오전 엘살바도르 우술루탄주 콘셉시온 바트레스 시청에서 만났다.
피네다씨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어머니는 옥수수 반죽을 구워 만든 토르티야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난한 형편 탓에 대학에 간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월드비전 결연아동으로 후원을 받으면서 꿈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월드비전이 경제적 도움뿐 아니라 현지 학교와 협력해 아이들의 능력개발 직업교육 문화활동 등을 지원하며 생각과 경험의 폭을 넓혀줬기 때문이다.
피네다씨는 현재 산미구엘 국립대 2학년으로 국제통상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월드비전에서 일하며 다른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받은 꿈을 돌려주는 게 목표다. 김 목사는 “좋은 모델이 돼 줘 정말 고맙고 후원자들에게 큰 보람이 될 것 같다”며 그를 격려했다.
이어 김 목사 일행은 산타루치아 공립학교를 방문했다. 4∼10세에 해당하는 학생 54명이 양철 지붕과 벽을 잇댄 허름한 1층 건물 하나를 두 공간으로 나눠 공부하고 있었다. 이 중 16명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받고 있으나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여전히 교육환경은 열악하다. 아이들은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불이 꺼진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알바레즈씨는 “대다수 공립학교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만난 에버 알렉산더 가이탄(11)군은 조손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후원아동이었다. 아버지는 가출해 소식이 끊겼고 어머니는 4년 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는 설명을 듣자 김 목사 일행의 마음은 먹먹해졌다. 가이탄군은 부모 없이 외할머니 손에 자라면서도 학교에서 월드비전 후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씩씩하게 지내고 있었다. 김 목사가 직접 준비해 온 축구공에 바람을 넣어 학용품과 함께 품에 안겨주자 가이탄군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이날 오후에는 김 목사와 결연돼 있는 후원아동 베르나르디노 길레르모 소르토(4)군을 만났다. 소르토군의 어머니 브로사 자넷(35)씨는 “월드비전이 제공하는 0∼6세 아동 영양공급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줄 수 있는 방법과 아이를 소중하게 대하는 육아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소르토군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서 “호날두나 메시 둘 다 좋아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그에게도 축구공을 주면서 “앞으로 TV에 나와서 축구하는 모습 기대할게”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지난 12일 오전에는 왜소증을 앓고 있는 나옐리 크리스텔 몬테스(7)양을 찾았다. 성장이 멈추고 신체가 퇴행하는 희귀병 ‘모르키오 증후군’이 원인으로 보였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할머니와 살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면서 수술비를 마련할 형편이 못 됐다. 다행히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비틀어져 있던 발을 펴는 수술을 마치고 다음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한국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엘살바도르 사업장은 솔리다리다드, 누에바 비다, 투레 푸에르테 세 곳으로 각각 3000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알바레즈씨는 “장기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역량을 강화하는 게 최대 목표”라며 “이혼·한부모·조손가정 등이 많은 상황에서 건강한 가정의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가진 아이들이 가족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가정이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아이들이 ADP로부터 도움을 얻고 월드비전 직원들이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모범을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월드비전 ‘평화 만들기 워크숍’
아이들 음악연주와 미술활동 통해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길러요!
월드비전은 이달부터 엘살바도르 우술루탄주 콘셉시온 바트레스의 문화센터와 함께 ‘평화 만들기 워크숍’을 시작했다. 워크숍에 참석하는 어린이들은 음악연주와 미술활동을 통해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고 있다.
이곳 센터장인 콘셉시온 센테노 크루스(43)씨는 지난 1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워크숍의 목적은 아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엘살바도르에 만연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워크숍에 참가한 아이들은 12명. 쥐 거북이 등 동물을 그리며 회화 기초를 익혔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에 연필을 쥔 채 미술 강사가 칠판에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렸다.
현재 이 과정에 참여한 아이는 모두 80여명이다. 7∼12세는 미술을, 10∼17세는 음악교실에 참석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각 과정을 2시간씩 진행한다. 학부모들도 직접 찾아와 아이들이 교육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범죄조직에 들어가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빈곤을 대물림할 확률이 높다. 교육을 받고자 해도 비용이 부담돼 접근성이 떨어진다.
월드비전은 참가 아동들이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아동이라도 부담 없이 음악 미술 등 문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크루스씨는 “이곳에 온 아이들은 관심에 따라 음악과 미술활동을 선택해 참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면서 “이웃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갖게 되고 부모들 또한 서로 교제하는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우술루탄·콘셉시온 바트레스(엘살바도르)=글·사진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밀알의 기적] 전기료 못내 불꺼진 교실서 공부하는 아이들 꿈을 밝혀줘요
입력 2018-04-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