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김기식 살리기’… 완패한 靑

입력 2018-04-16 22:33 수정 2018-04-16 23:37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다. 김 원장은 이날 저녁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신과 관련된 의혹 일부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리자 사의를 표명했다. 윤성호 기자
선관위의 ‘셀프 후원=위법’ 판정으로 청와대의 오판과 검증 실패 문책론 거세질 듯
상당수 전·현직 의원들 불법 행위자 될 가능성에 국회도 ‘폭탄’ 맞게 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의원 시절 각종 외유와 후원금 셀프 후원 논란에서 청와대가 완패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법 결정이 나오면서 김 원장 낙마뿐 아니라 전·현직 의원 출신 장관에 대한 후속 검증과 향후 인사의 난맥상까지 초래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한 지 이틀 만에 김 원장이 낙마했다. 검증 실패, 상황 오판에 대한 청와대 민정라인 문책 여론이 거세질 분위기다. 여기에 과거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가거나 일부 관련 기관에 셀프 후원했던 전·현직 의원도 불법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선관위 질의라는 청와대의 이례적인 시도가 전례 없는 파장을 낳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김 원장을 둘러싼 의혹들이 모두 적법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 원장이 금융개혁의 적임자이며, 반대 여론은 금융 기득권의 조직적인 저항이라는 인식도 내비쳤다. 이러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는데 부메랑이 돼 날아왔다. 청와대 민정라인은 이번에 불거진 의혹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했고, 후원금 땡처리 논란은 사후 검증을 했음에도 적법하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문 대통령이 “하나라도 위법이 있다면 (김 원장이) 사임토록 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청와대는 16일 선관위의 결정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후원금 땡처리 논란에 대해 선관위가 위법 결정을 내린 게 결정타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해외 출장 건에 대해서는 민정라인에서 검증을 했고 적법하다고 본다”며 “후원금 문제의 경우 어쨌든 선관위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후원금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 민정라인과 선관위의 판단이 달랐던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후원금이나 해외 출장에 대해서는 (처음) 검증할 때는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며 “문제가 제기된 이후 새롭게 검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앞서 김 원장이 더좋은미래에 5000만원을 기부하기 전 선관위에 적법 여부를 질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선관위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선관위 답변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 원장이 정반대 해석을 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도 선관위 답변서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선관위에 질문서를 보냈다”고 해명했다.

국회도 ‘폭탄’을 맞게 됐다. 상당수 전·현직 의원들이 불법 행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청와대는 지난 12일 19,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16개 피감기관 지원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경우가 자유한국당 94회, 더불어민주당 65회라고 밝힌 바 있다. 무리한 ‘김기식 살리기’가 가져온 후폭풍이다. 앞으로 의원 입각 시에도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방법이 없어 가뜩이나 인사 논란에 시달렸던 청와대의 자충수가 된 모양새다. 청와대의 선관위 질의가 김 원장의 ‘명예로운 퇴진’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오히려 ‘범법자’ 딱지만 붙이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원장 사퇴로 문재인정부의 차관급 이상 인사 낙마자는 모두 9명으로 늘었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날 김 원장의 사퇴와 상관없이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